‘재벌특권’의 붕괴인가? 또다른 구제금융의 서막인가?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롯데그룹이 위기에 처했다. 정확히 말하면, 빚더미 위에서 휘청이고 있다.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이제 희미해지고 있고, ‘빚도 실력’이라는 착각에 빠진 기업 경영이 결국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불안을 안기고 있다. 롯데그룹의 부채는 39조 원,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부채만 34조 원이다. 하지만 정작 그룹이 벌어들이는 돈은 초라하기만 하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했다. 덩치가 크면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시장에 깊이 박혀 있다. 그렇다면 롯데의 위기는 한국 경제가 또다시 재벌을 살릴 것이냐, 아니면 재벌의 실패를 인정할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아닐까?
‘빚도 실력’이라는 착각의 끝
롯데그룹의 부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미국·인도네시아 공장 투자로 돈을 쏟아부었고, 롯데쇼핑은 오프라인 유통망을 유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수해왔다. 하지만 기대했던 수익은 나오지 않았다. 한때 동남아 시장을 정복하겠다던 롯데는 지금 베트남 사업에서도 헤매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회사의 빚이 쌓였고,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은 “망할 리 없다”며 버티다가 1999년 순식간에 사라졌다. 현대그룹도 ‘왕자의 난’ 이후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됐다. 롯데가 그 길을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공적자금? 국민은 재벌의 ATM이 아니다
이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다. 롯데그룹은 자구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할 것이고, 금융권과 정부는 "시스템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칠 것이다. 쉽게 말해,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익숙한 장면 아닌가? 1997년 IMF 위기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리고 2016년 한진해운 사태 때도 같은 논리가 나왔다. 문제는 이 모든 구제금융의 끝이 ‘국민 부담’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수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고, 기업들은 살아남았지만, 정작 총수 일가는 책임을 졌는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를 버텨낸 대가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구조조정을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였다.
롯데의 위기는 롯데가 해결해야 한다. 경영진이 무리한 확장을 하면서도 배당금과 고액 연봉을 챙겼다면, 이제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세금으로 재벌을 살리고, 실패한 경영자들은 살아남는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한국 경제, 또다시 ‘재벌 리스크’에 갇힐 것인가?
롯데그룹이 정말로 무너진다면, 한국 경제에는 상당한 충격이 있을 것이다. 금융권은 연쇄적인 부실을 걱정할 것이고, 수많은 협력업체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란 본래 스스로 경쟁력을 입증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
롯데는 이미 오래전부터 ‘옛날 방식’의 경영을 유지하며 변화하지 못했다. 유통업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었지만, 롯데는 여전히 오프라인에 의존하고 있다. 화학사업은 글로벌 공급망 변화 속에 수익성이 악화됐지만, 대규모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 결과가 부채로 돌아왔다.
롯데의 위기는 한국 경제의 경고등이다. 잘못된 기업 경영을 언제까지 ‘국가적 문제’로 떠안아야 하는가? 이제는 냉정하게 시장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고, 부실한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 단지 “크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유효하지 않다.
정부와 금융권이 또다시 공적자금을 동원할 것인지, 아니면 진짜 구조조정과 개혁이 이뤄질 것인지, 한국 경제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다. 이제 국민은 더 이상 재벌의 ATM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