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대한민국 사법부가 ‘독립’을 지향한다는 말은 참 오래된 미신(迷信) 같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스스로 외치지만, 정작 법원 내부에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파벌’이 존재해 왔다.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법연구회’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모임인지, 아니면 ‘법’을 연구하자면서 정치색을 한껏 드러내는 모임인지 헷갈릴 정도다.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고위직에 ‘우리법’ 출신이 늘었다고 떠들썩하다. 애초에 이 모임은 1980~90년대 젊은 판사들이 “인권과 헌법 가치를 중시하자”라며 출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듣기엔 훌륭하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칭하든, 보수라고 칭하든, 재판과정에서 인권을 강조한다면야 누가 뭐라 할까. 문제는, 유독 이분들이 재판대 위에만 올라가면 “특정 정치나 이념 그룹이 조직화됐다”는 구설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사실, 법원 내부의 파벌 놀이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다만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우리법연구회’가 가시화되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판사들이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줄을 잇는다. 솔직히 말해, 진보든 보수든 권력과 밀착하는 순간 ‘독립성’은 물 건너간다. 정말로 독립된 재판을 지향한다면, 차라리 아무런 이름도 걸지 말고 조용히 각자 공부나 열심히 하면 좋지 않겠나.
물론 이들은 “학술 연구와 교류를 위한 소모임”이라고 주장한다. 애초에 단체 이름에도 ‘연구회’가 붙으니, 밖에서 보기엔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법원 내부에서조차 “정치적 사조직”이라는 비판을 부르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게다가 일부 언론에선 “탄핵 사건에서 인용 판결이 나온 것도 결국 우리법연구회 출신 재판관들이 커넌트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식의 의혹을 제기한다. 물론 헌법재판관 9명이 전원합의로 결정했다는 ‘공식’ 스토리가 있다. 그래도 비슷한 이념적 경향을 가진 이들이 모이면 ‘기류’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니, 아예 무시하기엔 좀 찜찜하긴 하다.
그렇다고 이 모임이 사법부 전부를 뒤흔드는 무소불위 세력이라는 이야기도, 솔직히 믿기 어렵다. 회의나 보고서, 토론회 기록 등을 찾아봐도 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자”는 내용이 대다수고, 겉으론 참 ‘착한’ 취지의 모임이다. 정작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특정 방향의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당장 이 연구회에서 집단 결의를 했다거나, 그 판결문에 “우리법” 스탬프라도 찍혀 있다는 증거는 없다.
문제는 ‘불투명성’과 ‘오해’다. 우리법연구회에 몸담았던 이들이 사법부 요직에 올라가고, 그 결과를 두고 언론과 정치권에서 “진보 성향이 사법부를 장악했다!”고 호들갑을 떠니, 애꿎은 국민들만 헷갈린다. 대체 누가 진짜로 법과 원칙을 지키고, 누가 숨어서 학연·지연·이념 끈을 잡고 있는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사법부가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면, 제발 이런 파벌 놀이부터 떨쳐내길 바란다. ‘우리법연구회’든 ‘그들법연구회’든 간판을 달아놓고 모이는 건 자유지만, 그래서 불투명성과 권위주의 체계가 유지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판사들 스스로가 “우리끼리만의 리그가 아니다”라는 걸 증명하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름값을 떠나 재판 결과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오로지 법리와 양심에 충실한 판결을 꾸준히 내놓으면 된다. 그럴 자신이 있는지, 아니면 ‘우리끼리’만 만족하며 끝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