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오영주 기자] 상법 개정안 거부권과 이복현의 사의, 기업 vs 주주의 끝없는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반발하며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일단 그 사의는 반려됐다. CBS 라디오에서 “최근 연락을 드려 제 입장을 말했다”며 담담히 밝힌 그의 모습은, 시장의 혼란 속에서 원칙을 지키려는 공직자의 고독한 외침 같았다. 하지만 사표가 반려된 지금, 이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상법 개정안, 그러니까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자는 이 안건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정부와 재계는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며 반대하고, 이 원장은 “시장 신뢰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필수”라며 맞서고 있다. 이 싸움의 본질은 기업과 주주 사이의 끝없는 줄다리기다.
기업과 주주의 입장차는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이사의 책임이 과도해져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잘돼야 주주도 잘된다”는 논리다. 반면 주주들은 LG엔솔 사태 같은 사례를 들며 분통을 터뜨린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시키며 주주 가치를 훼손한 그 사건은, 기업이 주주를 얼마나 쉽게 외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블랙코미디였다.
재계는 “경영의 자유”를 외치지만, 주주 입장에선 “자유는 좋다만, 우리 돈으로 그 자유를 누리지 말라”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원장은 바로 이 지점을 찌른다. 그는 “주주 가치를 무시한 경영이 계속된다면 시장 신뢰는 무너지고, 제2의 LG엔솔 사태는 시간문제”라고 경고한다. 시니컬한 입장에서 보면, 기업은 주주를 돈줄로만 보고, 주주는 기업을 배신자로 보는 이 갈등이 참 한국적이다.
상법 개정안의 통과 명분은 그래서 더 뚜렷해진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건, 단순히 법조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시장의 기본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주주를 배제한 채 회사만 챙기는 경영이 용인된다면, 자본시장은 선진화는커녕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주주 무시 태도 아니던가? 이 원장이 “대통령이 있었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작년 하반기까지 법무부도 거부권에 난색을 표했다”고 밝힌 건, 이 개정안이 본래 상식적인 방향이었음을 방증한다.
재계의 반대가 정치적 계산과 얽히며 거부권으로 이어진 이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개정안의 필요성을 더 부각시켰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안으로 내밀었지만, 이 원장은 “재계와 야당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대안은 있되 추진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기업과 주주 사이의 줄다리기에서 정부는 심판이 아니라 관객 역할만 하고 있는 셈이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주주 가치를 존중하는 시장이어야 기업도 지속 가능하고, 투자도 늘어난다. 재계가 반대한다고, 정치적 이해가 얽혔다고 이 원칙을 외면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시장 전체가 떠안는다. 이 원장의 사의 표명은 반려됐지만, 그가 던진 화두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블랙코미디 같은 줄다리기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적어도 주주는 더 이상 패배자로 남지 않을 것이다. 시장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개정안은 반드시 빛을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