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 이완성 칼럼니스트]
일하지 않은 황제
1619년 어느 봄날 자금성 문화전 마당에 수많은 신하들이 엎드러 황제에게 호소를 하고 있었다. "황상페하 나라의 사람이 어렵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나이다" "페하 여진의 위협에 대비해야 합니다" 신하들은 땡볕 아래서 온종일 황제에게 호소를 했지만, 묵묵부답하다가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할 즈음 환관이 황제의 궁에서 나와 황명을 전했다. "황상께서 신료들 모두 집에 돌아가시라" 신하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서 돌아갔다. "이 나라의 앞날을 어이할꼬?" 만력제(萬曆帝)는 30여년째 정사에 손을 떼고 있었다.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던 도통 관심이 없었다. 하루에도 황제가 승인해야 할 문서와 상소문들이 올라오지만 단 한줄 읽지 않고 쌓아두고 그 위에서 잠을 잘 뿐이었다. 조정의 31개 부처중 24개 부처의 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황제의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년째 공석상태 이었다. 황제에게 나라의 정책을 간언할수 있는 신하들은 황제의 얼굴조차 수년째 보기 힘들었고 대신 황제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이들만 황제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만력제가 일년내내 하는 일이라고는 수많은 궁녀들에 둘러싸여 부어라 마셔라 주색잡기에만 정신을 팔 뿐이었다. 사형을 판결받은 죄인도 황제의 승인이 나지 않아 늙어 죽었고 경미한 죄로 들러온 죄수도 처결이 이루어 지지 않아 옥사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이러니 나라가 제데로 돌아갈리 만무했다. 탐관오리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제 뱃속 채우기에만 몰두했다. 한 나라의 군주가 몇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아도 나라가 거덜날 판인데 삽십여년 째 이어진 황제파업 상태로 명나라는 당장 멸망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국 명나라는 만력제 사후 24년 후인 옹정제 때 누루하치의 후금에 멸망하지만 명나라의 숨통은 이미 만력제때 끊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장거정과 만력제
만력제는 10세에 재위에 오른다. 그의 곁에는 제갈량, 관중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행정력인 가진 명재상 장거정이 있었다.그는 치수사업을 통해 농업을 안정시키고 일조편법을 통해 복잡한 징수절차를 간소화 했으며 국방력을 튼튼히 해서 서서히 쇠락하던 명나라를 일시적으로 중흥시켰다. 태자때 부터 만력제의 스승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은 재위에 오른 어린 황제에게 혹독하게 공부를 시켰다. 경서를 달달 외우게 하여 암송을 제데로 못하면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질타를 하고 반성문까지 쓰도록 했다. "훌륭한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학문에 열심을 다학 항상 청렴해야 합니다" 만력제는 장거정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장거정은 병사하고 성인이 된 만력제는 친정을 하게 되었다. 장거정은 국가를 안정시켰지만 급격한 개혁을 하였기에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그의 사후에 탄핵을 당하게 된다. 만력제는 장거정의 재산이 황궁의 재산 보다 많고 그가 대부분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제 자신에게는 청렴하라고 혹독하게 말한 장거정의 추악한 이면을 알고는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으리라. 만력제가 재위기간 정사를 돌보지 않은 이유에 어릴때 장거정한테 받은 혹독한 훈육에 대한 반발심과 그의 부정축재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구세주
사실 만력제가 재위기간 동안 아무것도 안한건 아니었다. 159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왜군들이 조선을 침공해서 한양 도성을 단순에 점령하고 선조는 평양성 마저 내주고 의주로 피란길에 올랐다. 다급해진 조선 조정은 사신을 파견에 명에 원병을 요청했다. 자신의 나라의 정사에 눈꼽만큼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만력제는 원군을 파병하여 조선을 구원하라 명한다.
이에 병부상서는 입을 열었다. "황상페하 지금 발배의 난 때문에 저희의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조선에 대한 원병은 재고하셔야.." "무슨 소리야 자식의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부모의 도리로 어찌 가만히 있을수 있나? 발배의 난도 진압하고 조선에 원병도 보내고 그러시오" 병부상서의 얼굴은 수심에 가득 찼다. 그것 뿐만 아니었다. 전란으로 피페해진 조선의 강토는 백성들이 곡식을 구하지 못해서 왜군에 죽임을 당한 숫자 보다 굶어죽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았다. 이에 만력제는 조선의 백성들을 돌보고자 쌀 100만석을 조선으로 보냈다. 이에 신하들은 명의 백성들도 굶어죽는 자들이 넘쳐 나는데 조선에 쌀을 지원하는 보내는 황제를 보고는 기가 막혀 했다. 재위 말년에 후금의 위협에 변방의 장수가 달려와 군비가 부족하니 내탕금이라도 내어달라 했다. 황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으면서 한푼도 주지 않았다. 나라의 국고가 비어 있건 말건 관심없고 오로지 황제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데 관심을 두었다. 임란때 선조를 위로하고자 많은 금은보화를 내렸다고 한다. 정말 만력제는 작정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려 했던것 같다
후세의 사가들은 만력제를 조선을 구하고 정작 자신의 나라는 망하게 했다고 한다. 조선은 만력제의 은혜를 잊지않고 제조지은이라 하여 대보단, 만동묘를 짓고 구한말까지 제사를 지냈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고 강력했던 명나라는 그들이 오랑캐라 멸시하던 여진족에 멸망하며 누루하치가 청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가장이 무능하면 집안 살림이 어려워지고 경영자가 무능하면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며 군주가 일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만력제를 통해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