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아닌 ‘초위기’의 현실

전영선 CEONEWS 기자
전영선 CEONEWS 기자

[CEONEWS=전영선 기자] AI 시대의 석유는 컴퓨팅 능력이다. 이 자원을 가진 나라만이 미래의 지배자가 된다. 그렇다면 묻자. 대한민국은 지금 무엇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AI 패권을 꿈꾸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그들이 설계한 AI 판 위에서 소비자로 살아갈 뿐인가?

지금 세계는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총성 대신 서버의 굉음이 들리고, 석유 대신 컴퓨팅 파워를 두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는 미국과 중국, EU의 독무대다. 전 세계 182개국 중 AI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나라는 고작 32개국뿐이다. 나머지 150개국은 AI 인프라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컴퓨팅 파워가 곧 국가의 힘이 되는 시대, AI 데이터센터가 없으면 경제도, 과학도, 심지어 국가안보도 불가능한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아예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의 약 3분의 2를 장악하며 세계 AI 패권을 쥐고 있다. 중국 역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에 집중적으로 데이터센터를 뿌리내리며 영향력을 확장 중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어디쯤 서 있는가?

한국의 AI 데이터센터 현주소는 초라하다. 국내 AI 데이터센터는 단 43개에 불과하다. 미국(5426개), 독일(529개), 중국(449개)과 비교하면, 초격차는커녕 ‘초위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AI가 곧 미래 산업 경쟁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실제 대한민국은 디지털 강국이라는 착각 속에서 발목이 잡혀 있었다.

AI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서버 창고가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미래 경제의 심장이다. 심장이 약하면 몸 전체가 죽듯, 데이터센터가 약하면 경제 전체가 쓰러진다. 정부가 이제야 이 심장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지만, 이미 글로벌 경쟁자들은 저 멀리 달려나가고 있다.

최근 SK가 발표한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은 의미가 크다. 무려 7조 원 규모에 6만 장의 최신 GPU가 투입된다. 아마존(AWS)의 직접투자만 5조 4712억 원이다. 그러나 이 하나의 사례로 세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민관합작으로 2조 원을 들여 2030년까지 1엑사플롭스(EF)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정부 발표 역시 시급한 현실에 비하면 느긋하기 짝이 없다.

규모와 속도만이 아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력과 냉각 인프라를 요구한다. 랙당 전력 소모는 기존 데이터센터 대비 최대 10배가 넘는다. 국내 데이터센터는 이미 수도권 전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난 데이터센터 건설은 규제와 주민 민원에 막혀 진척이 더디기만 하다. 대한민국이 내세우는 ‘디지털 대전환’의 발목을 우리가 스스로 잡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AI 허브 국가’라는 허울뿐인 슬로건이 아니라 실제적인 AI 생태계 구축 전략이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IT시설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데이터센터를 무기로 국가 간 새로운 디지털 종속관계를 형성 중이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미국 또는 중국의 데이터센터 없이는 AI 서비스를 이용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대한민국 역시 지금 같은 속도로는 ‘AI 종속국’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유럽은 미국 의존을 우려하며 AI 데이터센터 자립에 2천억 유로(약 290조 원)를 쏟아붓고 있다. 인도, 브라질, 심지어 아프리카 연합마저도 AI 주권을 외치며 데이터센터 건설에 사활을 걸었다. 대한민국만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디지털 강국’이라는 자만에 빠져, AI의 패권경쟁에서 외면받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AI 데이터센터를 단지 산업의 일부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가적 미래 경쟁력과 경제 안보의 핵심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은 국가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지금의 계획보다 더 공격적이고 속도감 있게 AI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규제의 벽을 깨고, 민관 협력의 문을 더 과감히 열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늦다. 아니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AI 데이터센터로 세계 질서를 다시 짜는 동안, 대한민국은 이들의 하청국가나 소비자로 전락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를 지배하는 국가만이 미래를 지배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컴퓨팅 파워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AI 시대의 소비자로 남을 것인가? AI 데이터센터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 이상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없다. 오직 생존자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생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데이터센터의 초격차를 초위기로 방치할 시간이 없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AI 데이터센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AI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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