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인가? VS '개입'인가?

이재훈 CEONEWS 대표기자
이재훈 CEONEWS 대표기자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올해 5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노동법과 사법개혁으로 초반 드라이브를 걸었다. 동시에 보수언론의 비판이 증폭되며 ‘큰 정부’를 견제하는 정상적인 작동인지, 혹은 언론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며 여론을 재단하는 ‘개입’인지가 한국 정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논쟁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진 민주당 정부의 역사에는 언제나 ‘레거시 언론’과의 각(角)이 있었다.

■권력과 언론의 불편한 동거

역사는 반복된다. 먼저 김대중 정부의 2001년 대형 언론사 세무조사다. ‘언론권력과의 정면충돌’을 감행했던 이 법 집행은 “시장 투명성 회복”이라는 명분과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라는 비판을 동시에 낳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언론이 ‘감시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정치행위자’로 기능해 온 이중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첫 번째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갈등은 구조적으로 굳어졌다. 출입기자실 폐쇄와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은 “특권 해체”이자 “접근권 제한”이라는 상반된 해석을 낳았다. 브리핑룸 중심의 정보 공개는 제도적 평등을 내세웠지만, 취재의 비공식·비정형적 루트를 축소시키며 ‘권력의 정보 통제’라는 역비판을 유발했다. 훗날 기자실 복원 논의까지 이어진 이 공방은, ‘언론 자유’와 ‘특권적 접근’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를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언론중재법 개정’ 논쟁이 격화됐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시도는 피해 구제 강화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국제 인권단체 및 언론 단체의 우려를 불러왔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높은 배상 리스크가 권력 감시 보도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둘째, ‘고의·중과실’ 추정 구조가 취재원을 노출시키는 사법적 압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거대 여당 체제 아래에서 언론·플랫폼까지 포괄하는 ‘강화판’ 중재법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제도 윤곽은 아직 유동적이지만, 최대 배상배수와 적용 대상(정치인 등 권력자 배제 여부), 유튜브 등 1인 미디어 포함 범위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언론계는 “권력 감시 보도 위축”을, 여당은 “허위·조작 정보로 인한 실질 피해 구제”를 각각 내세운다. 결국 ‘피해 구제’와 ‘위축 효과’ 사이의 사회적 균형점을 어디에 찍느냐가 판가름을 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 이 문제를 ‘권력-언론-대중’의 삼각형으로 본다. 언론은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인 감시자이지만, 동시에 ‘의제 설정(agenda-setting)’을 통해 대중이 중요하다고 여길 의제를 선택하고 배치한다. 이론적으로 알려졌듯, 언론은 “무엇을 생각하게 만들 것인지”를 강하게 규정한다. 한국처럼 정치, 산업, 미디어가 얽힌 구조에서는 그 힘이 배가된다. 따라서 레거시 언론의 비판 보도는 ‘견제’일 수도, ‘개입’일 수도 있다. 이를 판별하는 잣대는 사실, 맥락, 비례성이다.

국제 비교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홀린과 만치니의 비교언론체계론은 국가별로 언론-정치-시장의 관계가 다름을 보여준다. 한국은 상업화된 미디어, 강한 정당 정치, 높은 정치적 극화라는 복합 지형 위에서 ‘폴라라이즈드 플루럴리스트(Polarized Pluralist)’적 속성과 ‘리버럴(Liberal)’ 모델의 혼합형 특성을 보인다. 이 구조는 ‘정파적 프레이밍’과 ‘시장 압박’이 결합해 의제 선정과 톤을 왜곡할 유인을 키운다. 최근 한국 미디어 시장의 경기·광고 압박과 신뢰 저하 역시 같은 맥락의 구조적 리스크다.

그렇다면, 지금 보수 언론의 공세는 무엇인가. 첫째, ‘큰 정부’의 제도개편(노동·사법)을 상시 감시하는 기능은 정상적인 작동이다. 둘째, 제도 논쟁을 권력 심판 서사로 과도하게 포장하는 프레이밍은 개입에 가깝다. 셋째, 플랫폼과 유튜브까지 포괄하는 규제 재설계를 ‘언론 재갈’로 뭉뚱그려 여론전을 주도하는 방식은 또한 개입의 흔적이다. 여당의 입법 드라이브가 빠를수록, 레거시 언론은 ‘속도의 정치’를 ‘과속의 위험’으로 바꾸려는 유인을 갖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 아니라 “증거, 피해, 비례성”의 데이터화다.

■데이터로 판가름하라

이재명 정부 초기에 보수 언론의 비판은 ‘정상적인 견제’와 ‘정파적 개입’이 겹친 혼합형이다. 정부가 제도 개혁의 정합성과 법기술을 치밀하게 다듬을수록 견제의 명분은 약화된다. 반대로 ‘정치적 속도’가 ‘법기술의 허술함’을 앞서면, 언론의 개입 서사가 힘을 얻는다. 승부는 결국 정치의 문장이 아니라 법률의 문장에서 난다.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팩트를 전달해야 여론이 형성되고 시민들이 수긍할 것이다. 권력과 언론은 때론 적과의 불편한 동거자 관계가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진짜 적'은 '가짜 뉴스'가 아닌 '시스템 붕괴'다

단기적으로 레거시 언론은 ‘권력의 과속’을 프레임으로 공세를 지속할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법정에서 가려질 사건들이 판례로 축적되며, ‘징벌적 손배’의 경계가 재설정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신문–방송–플랫폼의 경계가 무너진 혼성 미디어 체제에서, 정밀 규제와 투명 보정(정정·메타데이터 공개)과 독립 감시의 3점 지지대가 표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정부·정당·언론·플랫폼 모두가 스스로의 권력을 줄이는 쪽으로 설계를 바꾸지 못하면, ‘견제’와 ‘개입’의 경계는 더욱 흐려질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큰 정부의 개혁은 느려도 정교해야 하고, 큰 언론의 비판은 날카로워도 정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힘의 세기’가 아니라 ‘증거의 세기’로 진화한다. 정부는 데이터와 법기술로, 언론은 사실과 맥락으로 각자의 칼을 벼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견제’는 시민에게 이익이 되고, ‘개입’은 스스로 퇴장한다. 이 싸움의 심판은 정부도 언론도 아니다. 증거를 본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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