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박수남 기자] 오랜만에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보았다. 명작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상이 느껴지는 것 같다. 우선 이번에 보면서 느꼈던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사람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묻어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해서, 두 사람의 성장과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따뜻한 포레스트 검프의 느낌이다. 둘째 미국이라는 나라의 지나온 과정을 냉정하게 투시했다는 점이다. 포레스트 검프로 대변되는 미국 사회의 보수적인 모습. 제니로 대변되는 미국 사회의 진보적인 모습. 그 양자 간의 충돌과 화해를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므로 영화의 본래 메시지와는 다를지 모르겠다.
첫 번째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제니와 포레스트는 무척이나 다른 성장 기반을 가지고 있다.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이 낮은 바보지만 따뜻한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라난다.그러하기에 장애를 이겨 내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그러나 제니는 그렇지 않았다. 충분히 매력 있고 잠재력 있는 아이였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아버지의 성추행)는 제니를 결코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굿 윌 헌팅에서도 느꼈던 감상이지만 아이에게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하다 못해,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모는 아이에게 신과 같다. 신이 피조물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아이는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한다. 포레스트 검프는 어머니라는 신을 통해 밝음이 되었다. 제니는 아버지라는 신을 통해 어둠이 되었다. 포레스트 검프는 미식축구 선수, 전쟁 영웅, 외교 사절, 선장, 구도자 모든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지만, 제니는 대학 제적, 성인쇼의 벌거벗은 가수, 히피, 창녀,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모든 인생에서 실패자였다. 냉정하게 말해, 포레스트의 부모가 제니의 부모였다면, 제니의 부모가 포레스트의 부모였다면, 둘의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줄곧 그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역할.부모라는 신의 과책이 얼마나 아픈 상처를 남기는지.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위와 같은 상처를 보듬아내었다.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겠다. 차가운 영화라는 표현은 포레스트 검프가 미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투영했다는 것이다. 포레스트의 삶의 궤적은 미국 사회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흑백 간의 갈등은 대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로. 베트남전의 어두움은 파병 간 포레스트의 군인으로서의 삶으로. 워터게이트, 케네디의 암살. 포레스트 검프의 삶의 궤적 자체가 미국의 근현대 역사를 담아냈다.
그런데 제니의 역할은 무엇일까? 제니는 철저히 미국의 진보적인 가치를 대변한다. 조운 바에즈가 되고 싶고, 밥 딜런의 반전 노래를 부르는 제니는 미국의 전쟁 가치가 잘못되었음을 꼬집는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방종한 모습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히피들의 답 없는 여행, 마약에 찌든 젊은이들의 모습, 반전을 외치는 혁명 단체의 모습들, 그리고 식당 종업원이라는 노동자가 되어버리는 제니의 모습들. 그런데 포레스트 검프가 대변하는 보수적 가치는 항상 옳고 현명했다. 과하게 말해 축복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니로 대변되는 진보적 가치는 철저히 실패해 버렸다. 물론 첫 번째 영화 감상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니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진보적 가치는 태생적으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두 가지 가치는 절대 하나가 되지 못한다. 포레스트 검프는 제니와 간절히 하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제니는 번번이 검프에게서 탈출한다. 마지막에 제니와 포레스트 검프는 하나가 된다. 제니가 포레스트 검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니는 결국 병에 걸려 죽게 된다. 미국의 진보적 가치는 결국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닐까? 다행인 것은 검프와 제니의 아들이다. 두 가치는 줄곧 다른 길을 걸어오다 아들을 낳음으로써 두 가치는 하나가 되었다. 게다가 영특하고 똑똑한 아이의 모습은 두 가치의 충돌이 결국 하나의 생명을 만들 것이고, 그 생명은 무척이나 바람직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따뜻하지만 차가운 영화였다. 포레스트 검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