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북·중·러 전략적 밀착 본격화
한국 기업, 에너지·안보·제재·경쟁 리스크 직면 중
공급망 다변화와 신시장 개척으로 위기 기회 모색 필요
[CEODAILY=이재훈 기자] 미국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무역 환경에 변화를 일으키는 가운데, 중국의 전승절 80주년을 기점으로 중국, 러시아, 북한이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중·러 3국의 밀착이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북한, 중국,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들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전승 80주년 행사에 참석하며 한자리에 모였다. 이 시기는 미국이 관세 정책을 강화하며 전통적 우방국도 수용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행사에는 26개국 정상과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한국 측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여했다. 반면 미국, 일본, 서방 선진국 정상들은 불참했다. 참석국들은 미국 주도의 서방 세력과는 대조적으로 위치하며, 북·중·러의 협력 강화가 동북아 지역 정세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중·러 밀착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안보 분야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북한이 군사 지원과 인력 파견을 제공하고, 중국도 전략적 지원에 가담하는 형태로 협력 구조가 진전됐다. 이로 인해 군사적 연대가 심화되고 에너지, 식량, 무기 교환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둘째, 경제적 협력 측면에서 러시아는 자원 공급, 북한은 저임금 노동력과 군수물자, 중국은 제조 기술과 자본을 각각 담당하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셋째, 이 세 국가는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제재 체제에 대응해 동북아에서 반(反) 제재 블록을 구축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러시아는 제재로 인해 에너지와 무기 수출 경로를 모색하는 가운데 북한을 군수품 생산기지로 활용한다. 북한은 군사 기술과 인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에너지, 식량, 외화를 지원받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 완충지대 강화를 통해 서방의 압박에 대응하며 자원과 군사, 외교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삼각 협력은 단기적 협력이 아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지속 가능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북·중·러 3국의 긴밀한 협력 구조는 한국 기업에 네 가지 주요 충격을 준다. 첫째, 에너지 및 원자재 확보의 위험이 증가한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우선 순위가 중국과 북한에 집중되면서 한국의 LNG와 석유 확보 비용이 상승하거나 안정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희토류 등 전략자원이 이들 국가 블록에 집중될 경우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 압박 요인이 된다. 둘째, 안보 리스크가 커진다. 북한의 군사 도발 빈도 증가와 북·중·러 합동 군사훈련은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을 높여 외국인 투자 감소와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글로벌 규제 압박이다. 북·중·러 관련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은 미국의 ‘세컨드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조선, 에너지, 방산 업계는 거래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실사와 법적 검증이 필요하다. 넷째, 시장 경쟁이 심화된다. 중국과 러시아 간 경제 협력 확대는 한국 기업이 진출한 중앙아시아, 동남아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가중시키고,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는 한국의 기술 우위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은 네 가지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 첫 번째는 공급망 다변화로, 원자재와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 호주, 중동, 아프리카 등과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소재는 한·미·일 공급망 연대를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글로벌 제재 준수를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과 EU의 제재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해외 법률 자문을 통해 거래 위험을 최소화하며, ‘컴플라이언스 관리팀’을 글로벌 수준으로 강화해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비해야 한다. 세 번째는 안보 리스크 내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파트너에게 ‘한국 리스크 관리’ 전략을 명확히 설명하고 금융·보험 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노력이 포함된다. 네 번째는 신시장 개척과 차별화 전략이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에서 중국 기업과의 단순 가격 경쟁을 지양하고 ESG 및 브랜드 신뢰도를 앞세워 차별화하는 한편, 인도 및 중동 등 비(非)중·러 블록 지역에서 전략적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별 대응 방향도 제시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희토류와 반도체 장비의 공급망 다변화와 미·일 협력을 통해 안정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중국과 가격 경쟁을 지양하고 친환경차 및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에서 차별화해야 한다. 포스코와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관련 기업은 핵심 소재 조달을 위해 인도네시아, 호주와의 장기 계약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조선과 방산 업체들은 러시아, 중국과의 거래를 피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발주를 확대해 제재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북·중·러의 밀착은 한국에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안보 측면에서는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후방 지원을 확보하며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지속할 기반을 마련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적 태도는 국제 제재 체계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는다. 또한 북한과 러시아 간의 군사 협력 및 중국의 무기 과시는 한반도 안보 환경을 불안정하게 하며 확장억제의 강화가 요구된다.
한편, 이 밀착은 한국에게 전략적 기회도 제공한다. 남북 접점이 확대되면서 한국은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고, APEC, G20, UN 등 다자 채널을 통해 외교적 입지를 높일 수 있다. 동시에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프레임워크를 선제적으로 제안함으로써 협상 기준선을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
경제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위협을 받지만, 동시에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블록 경제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공급망 재편, 리스크 내성 확보, 신시장 개척 등 3대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위기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받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