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진영이 충돌한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목격한 신냉전 시대의 개막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25년 9월 3일 오전 10시, 베이징 톈안먼 광장. 전 세계 70억 인구가 숨죽여 지켜본 그 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검열대에 올랐다. 중국 건국 76주년이자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퍼레이드. 하지만 이날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었다. 북한·중국·러시아 3국 정상이 함께한 이 장면은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신냉전(New Cold War)'의 공식 선전포고였다.
"동지들이여, 새로운 시대가 왔다!" 시진핑의 연설이 광장을 가득 메웠을 때, 서방 외교가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30년간 지속된 탈냉전 질서가 막을 내리고,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진 세계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북중러 삼각동맹, 권위주의의 연대
▲시진핑의 야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은 더 이상 '평화적 굴기'를 말하지 않는다. 시진핑 정권은 2025년을 기점으로 '공세적 패권주의'로 전환했다. 이날 군사퍼레이드에서 공개된 신무기들이 그 증거다. DF-27 극초음속 활공체는 마하 10의 속도로 미국 본토 어디든 1시간 내 타격이 가능하다. J-35A 스텔스 전투기 50대가 일사분란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며 미국의 F-35 독점 체제에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무인 전투기 GJ-11과 인공지능 기반 자율무기체계는 '무인전쟁' 시대의 서막을 예고했다. 중국 군사전문가 장웨이핑(張威平)은 "중국이 미국과의 군사적 격차를 2030년까지 완전히 메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의 국방비는 올해 2,960억 달러로 미국(8,160억 달러)의 36% 수준까지 올라섰다.
▲푸틴의 계산: 서방 제재 탈출구 찾기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째 장기화되면서 러시아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택했다. 서방과의 완전한 단절 대신 '동방 대전환(Pivot to East)'을 선택한 것이다. 푸틴은 이날 연설에서 "서방의 일방적 제재와 패권주의에 맞서 정의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이미 중국과 연간 2,400억 달러 규모의 무역을 기록하며 대중 의존도를 급격히 높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러시아가 북한을 단순한 '문제 국가'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시켰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포탄과 미사일 기술, 그리고 10만여 명의 파병 인력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정보당국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의 승부수: 핵 카드로 격상된 지위
가장 극적인 변화는 북한의 위상이다. 과거 중국의 '골칫거리' 취급을 받던 북한이 이제는 '핵심 동반자'로 대접받고 있다. 김정은이 시진핑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1950년대 김일성이 마오쩌둥 옆 네 번째 줄에 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은 이제 중국과 러시아에게 '미국 견제의 핵심 카드'가 된 것이다. 북한은 올해만 17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력 완성을 과시했다. 특히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의 실전 배치로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미국 국방부는 북한이 핵탄두 50~60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00개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일 연대, 민주주의 진영의 반격
▲트럼프-이재명-이시바 트라이앵글
북중러의 결속에 맞서는 것은 한미일 삼각 안보 연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재명 한국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인도·태평양 삼각동맹'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으로 한국과 일본을 완전히 편입시켰다. 한미일 3국은 실시간 미사일 정보 공유, 공동 군사훈련 정례화, 첨단무기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특히 한국의 킬체인(Kill Chain)과 일본의 반격능력(Counter-Strike Capability)을 연동시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선언
가장 주목할 변화는 일본이다. 이시바 정부는 전임 기시다 정권의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정책을 계승하며 평화헌법 체제를 사실상 폐기했다. 일본은 2027년까지 국방비를 GDP 대비 2%로 끌어올려 세계 3위 군사강국으로 부상할 계획이다. 일본이 도입 예정인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 400발은 북한과 중국 동해안을 사정권에 둔다. 여기에 자체 개발 중인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더해지면 동북아 군사 균형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한국의 딜레마: 안보와 경제의 이중 압박
한국은 가장 복잡한 위치에 있다. 안보적으로는 한미일 연대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투자 대상국이다. 2024년 한중 교역액은 3,620억 달러로 한국 전체 교역의 23%를 차지한다. 문제는 한미일 연대 강화가 필연적으로 중국의 경제 보복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사드(THAAD) 배치 당시 중국의 경제 제재로 한국이 입은 피해는 연간 150억 달러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신냉전 구도가 심화될 경우, 특히 이재명 정부의 대중 관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경고한다.
■기술패권 전쟁, 새로운 전장의 등장
▲반도체를 둘러싼 격돌
신냉전은 단순한 군사적 대립이 아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배터리 등 첨단기술을 둘러싼 '기술패권 전쟁'이 핵심이다. 미국은 '칩4 동맹'(한국·일본·대만·네덜란드)을 통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네덜란드 ASML의 EUV 노광장비,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의 식각장비 대중 수출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7나노급 자체 생산 능력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화웨이의 키린 9000S 프로세서가 그 성과다. 비록 성능은 떨어지지만 서방 제재를 우회한 독자 기술력을 입증했다. 한국은 이 기술 전쟁의 최전선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지만, 중국 공장에 대한 투자와 운영을 지속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공급망 재편의 쓰나미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효율성'보다 '안보'를 우선하는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친구들과의 교역(Friend-shoring)'전략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고, 테슬라는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산 의존도를 2025년까지 50%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반면 중국은 일대일로(BRI)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적 경제권 구축에 나서고 있다. 중국 주도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결제망도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반도, 신냉전의 뇌관
▲38선이 다시 그어지는 세계
한반도는 신냉전의 상징적 무대이자 가장 위험한 화약고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대치했던 냉전 시대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통일 담론을 완전히 포기했다. 김정은은 "남북관계는 교전 상태에 있는 두 적대국 관계"라고 선언하며 분단 고착화를 기정사실화했다. 한국도 '비핵화'에서 '억제'로 대북정책을 전환했다. 이재명 정부는 전임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수정해 '단계적 신뢰구축'을 제시했지만, 북한의 적대적 행보로 사실상 '힘에 의한 평화'가 새로운 기조가 됐다.
▲핵 도미노의 공포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핵확산이다.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에 맞서 한국 내에서도 '자체 핵무장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한국 국민의 76%가 자체 핵무장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보수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도 핵 옵션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만약 한국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일본도 따라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에서 5개국(중국·러시아·북한·한국·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만 해협, 또 다른 뇌관
한반도와 함께 신냉전의 뇌관은 대만 해협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한국은 '제2의 우크라이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만 방어 작전 참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이 대만 문제에 개입할 경우 중국의 보복은 불가피하다. 한국은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잃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한 셈이다.
■생존 전략, 균형외교의 부활
▲제3의 길은 있는가
신냉전 구도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완전한 친미 일변도도, 중립적 균형외교도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창의적 해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냉전 시기 핀란드는 '핀란드화'라는 독특한 전략으로 생존했다. 소련과의 군사적 중립을 보장받는 대신 경제적으로는 서방과 협력하는 방식이었다. 오스트리아도 영세중립국 지위로 동서 진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했다. 한국도 '전략적 애매성(Strategic Ambiguity)'을 활용한 독자적 생존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안보는 한미동맹에 의존하되, 경제는 중국과의 협력을 지속하고, 동시에 동남아·인도 등 제3지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헤징(Hedging)' 전략이 그것이다.
▲기술 자립의 절실함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기술의 자립이다. 반도체, AI, 배터리, 바이오 등 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서 '기술 초크포인트'를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글로벌 1위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전략 자산이다. 미국도 중국도 한국의 기술과 생산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압박하기 어렵다. 정부는 'K-반도체 벨트' 프로젝트에 622조 원을 투입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차세대 배터리, 우주항공, 바이오 등을 더해 '기술 G7'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프트파워의 활용
한국이 가진 또 다른 자산은 소프트파워다.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로 이어지는 한류는 전 세계적 문화 현상이 됐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은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문화적 영향력은 정치·경제적 협력의 토대가 된다. 한류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성인이 되면 한국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 외교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갖지 못한 한국만의 고유한 강점이다.
▲2025년, 선택의 순간
2025년 9월 3일 톈안먼 광장에서 목격한 장면은 단순한 정치 쇼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냉전 시대의 공식 선언'이었다. 북중러의 권위주의 연대와 한미일의 민주주의 동맹이 정면충돌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은 이 거대한 지정학적 격변의 한복판에 서 있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전략적 딜레마'는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이 기술력과 소프트파워, 그리고 창의적 외교로 독자적 생존 공간을 확보한다면 신냉전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한국호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 답을 찾는 것이 2025년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