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심장을 꿰뚫다
'돈의 논리'를 '행성의 논리'로 바꾼 무한도전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

[CEONEWS=이재훈 기자] 2022년 9월 14일, 전 세계를 휩쓴 한 줄의 뉴스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가 자신의 회사 지분 100%를 환경보호에 넘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가 30억 달러, 한화로 약 4조 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을 '매각'이나 '상장'이 아닌 '증여'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지구에 되돌려준 이 사건은 단순히 미담으로 치부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일대 혁명이었다. "이제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는 그의 선언은 이윤 극대화라는 철옹성 같던 기업의 존재 이유를 정면으로 깨부쉈다.

기존의 기업들은 주주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달려왔다. 그러나 쉬나드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우리는 상장 대신, 목적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는 단기적인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구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파타고니아의 철학을 뼛속까지 증명한 사건이다. 이 결정으로 파타고니아는 매년 1억 달러(약 1,300억 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홀드패스트 컬렉티브(Holdfast Collective)'라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과 자연 보전에 투입하게 됐다. 이제 파타고니아의 성장은 지구의 건강과 직결된 셈이다. 이본 쉬나드는 '성장은 수단이고 목적은 지구'라는 자신의 신념을 광고가 아닌, 소유권 이전이라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전 세계에 선포했다.

■"마지못해 사업가가 된 장인"... 실패가 만든 역설의 성공 신화

쉬나드의 삶은 정해진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좇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1938년 미국 메인주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 이민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정규 교육 과정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특히 1947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 맹금류 관찰을 위해 절벽을 오르내리면서 등반의 매력에 빠졌다. 기성 등반 장비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직접 '피톤(암벽 등반용 쇠못)'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 정신은 훗날 파타고니아의 핵심 DNA로 자리 잡게 된다. 그의 사업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자신이 만든 피톤을 동료 등반가들에게 판매하면서 트렁크에서 시작된 '슈이나드 이큅먼트(Chouinard Equipment)'는 1970년대 미국 최대 등반 장비 업체로 성장한다. 하지만 1989년, 제품 책임 소송과 경영난에 부딪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그의 첫 번째 사업은 좌초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이 좌절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핵심 인력들이 자산을 인수해 '블랙다이아몬드'를 설립했고, 쉬나드는 이미 시작한 의류 사업인 '파타고니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이 실패는 그에게 이윤만을 좇는 기업이 아닌, '목적'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이 재킷 사지 마세요"… 기성 관념을 깨부순 역설의 마케팅

파타고니아 로고
파타고니아 로고

 

파타고니아의 성장은 쉬나드의 혁신적인 경영 철학 덕분이었다. 1973년 벤투라에 첫 매장을 연 파타고니아는 '오래 입을수록 더 가치 있는 옷'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했다. 그리고 2011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역대급 마케팅 캠페인을 선보였다. 바로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에 뉴욕타임스 전면에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 사지 마세요)"라는 도발적인 광고를 실은 것이다. 이 광고는 단순한 화제성 마케팅이 아니었다. 무분별한 소비를 조장하는 기존의 패션 산업에 정면으로 맞서는 선전포고였다.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의식 있는 소비'의 중요성을 각인시켰고, 파타고니아의 철학을 뼛속까지 심어줬다. 이는 제품의 내구성과 수리를 강조하는 '워른웨어(Worn Wear)'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파타고니아는 전 세계 110개 수선 거점을 운영하며 2024년 유럽에서만 3만 벌의 옷을 수선하는 등,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 '오래 쓰는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환경 경영, 선언을 넘어선 구조와 제도의 혁신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

쉬나드의 환경 경영은 단순한 사회적 책임(CSR) 활동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2002년, '1% for the Planet'이라는 파격적인 이니셔티브를 공동 설립했다. 이는 연간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룰로, 현재 5천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적 이슈에도 적극 개입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국립기념물 보호 구역을 축소하자, 파타고니아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당신의 땅을 훔쳤다"는 문구를 웹사이트에 내걸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업의 목소리를 당당히 냈다. 또한 2007년부터 '풋프린트 크로니클즈'를 통해 원부자재 조달처와 제조 공장을 공개하는 등, 공급망 투명성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2022년 파격적인 소유 구조 개편으로 방점을 찍었다. 파타고니아는 '파타고니아 퍼포스 트러스트(Patagonia Purpose Trust)'와 '홀드패스트 컬렉티브(Holdfast Collective)'라는 두 개의 신탁으로 회사를 분할했다. 전자는 의결권 2%를 보유하며 기업의 가치와 거버넌스를 수호하고, 후자는 비의결권 98%를 소유하며 배당금을 환경 보호에 투입하는 구조다. 이는 쉬나드의 "기업을 팔거나 상장하면 단기 수익 압력에 시달린다"는 우려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은 이를 '목적 중심 소유 구조'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분석하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이미 B코프(B Corporation) 인증에서 기준점수인 80점을 훨씬 뛰어넘는 166점을 획득했고, 2040년까지 공급망 전체에서 90%의 탄소 감축이라는 과학 기반 목표를 설정하며 환경 경영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진정한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립자 이본 쉬나드

이본 쉬나드는 자신을 "마지못해 사업가가 된 장인"이라 표현한다. 그는 등반과 환경 보호라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업이라는 수단을 택했다. 1983년 직장 보육시설 도입, "Let My People Go Surfing(파도 오면 일은 미뤄라)"으로 상징되는 유연근무제 등 직원 복지에도 앞장섰다. 그의 경영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의 결과였다. 파타고니아의 모든 혁신은 일관된 철학의 산물이다. 광고나 구호에 머물지 않고, 소유권 이전, 배당 정책, 법적 대응 등 모든 경영 활동을 통해 브랜드 철학을 증명했다. 84세의 쉬나드가 보여준 이 대담한 실험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지구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모델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의 도전은 전 세계 기업가들에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의 진짜 주주는 누구인가? 투자자인가, 아니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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