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에 굴복한 극장업계의 몰락과 생존의 갈림길
[CEONEWS=전영선 기자] 극장산업의 종말인가, 혁신의 시작인가? OTT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무릎 꿇은 CJ CGV 미국 철수, 한국 영화 산업에 경종을 울리다. 과연 극장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혁신으로 부활할 것인가? 이제는 ‘영화관’도 새 시대 ‘콘텐츠 경험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2025년 9월 21일, CJ CGV가 미국 LA 지점을 영구 폐쇄하며 북미 시장에서 완전 철수한다. 15년 전, 야심 차게 출사표를 던졌던 CGV는 이제 미국 내 단 한 곳도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17년 부에나파크 지점 폐쇄에 이어 불과 5개월 만에 LA마저 문을 닫았다. 극장 사업의 ‘글로벌 원정대’는 실패했고, CJ CGV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기업의 해외 철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OTT(Over-The-Top) 플랫폼의 폭발적 성장과 극장 산업 전반의 쇠퇴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 앞에서 전통적 영화관 비즈니스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OTT에 무릎 꿇은 전통 극장 산업
CJ CGV 미국 철수의 첫째 이유는 명확하다. OTT의 맹공이 전통 극장 수요를 급감시켰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HBO 맥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이 콘텐츠 소비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비대면 문화는 OTT 산업에 기름을 부었고, 소비자들은 ‘집에서 편안하게’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는 데 완전히 익숙해졌다. 결과는 가혹했다. 미국 영화관 방문객 수는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 급격히 줄었다. CGV가 진출했던 LA와 부에나파크 같은 지역은 인근에 다양한 OTT 구독자들이 포진해 있었고, 굳이 극장을 찾을 동기가 희박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OTT가 제공하는 편리성과 다양성, 맞춤형 콘텐츠가 소비자 선택의 중심이 되면서 ‘극장 가기’는 점차 ‘필수’에서 ‘사치’로 전락했다. CGV 미국 철수는 이 거대한 소비 트렌드의 산물이다.
■극장 산업 자체의 위기, 구조조정으로도 해법 못 찾아
CJ CGV의 미국 철수는 내부 경영 악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올해 2분기 국내 영화 사업 매출은 1,41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8%나 줄었고, 영업손실 173억 원을 기록했다. 부채 규모도 무려 3조 3265억 원에 달한다. 단순히 해외 사업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 사업의 부진과 맞물린 총체적 위기다. 국내에서도 CGV는 올해만 12개 지점을 폐쇄했고, 지난 2월 희망퇴직까지 실시했다. 시장의 위축과 소비 패턴 변화가 ‘버티기’ 전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극장 산업 자체가 쇠퇴하는 와중에, CGV는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에만 몰두하고 있지만, 이 역시 근본 해법은 아니다. 소비자가 ‘극장’을 찾게 만들 혁신적 콘텐츠 경험과 서비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시급하다.
■미국 시장 철수, CJ CGV에게 남겨진 과제
이번 철수는 ‘글로벌 확장 신화’가 무너진 상징적 사건이다. CGV가 미국에서 15년 동안 쌓은 브랜드 파워도, 현지화 전략도 OTT의 파도 앞에서는 무력했다. 미국 시장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신흥 시장에서도 OTT의 강력한 성장세는 불가피하다. CGV는 국내 시장에서 여전히 존재감이 크지만, 국내 극장 산업 역시 OTT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OTT는 한국에서도 급속도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고, 콘텐츠 제작 경쟁력도 따라잡고 있다. 이 흐름을 외면한다면 국내 극장 사업도 미국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극장 산업, 정말 ‘끝’인가? 반격 가능성은?
OTT가 영화 소비 방식을 바꿨다고 해서 극장 산업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극장만의 경험’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와 같은 단순한 ‘스크린 상영’이 아니라, 프리미엄 콘텐츠, 몰입형 기술(예: IMAX, 4DX), 독점 이벤트, 커뮤니티 중심의 문화 공간으로의 진화여야 한다. CGV와 같은 대형 체인은 이런 혁신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실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업 전략은 ‘확장’과 ‘규모’에만 집중해왔고, 콘텐츠 경쟁력과 혁신 서비스는 부족했다. OTT 시대에 맞는 극장 비즈니스 모델은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결론은 OTT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극장 혁명’이 필요하다. CJ CGV 미국 철수는 냉엄한 현실을 드러냈다. 전 세계 영화관 산업이 OTT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위기를 맞고 있으며, 기존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CGV를 포함한 전통 극장 사업자들이 OTT와 차별화된 ‘극장만의 경험’을 재발명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영업점 수 줄이고 비용 절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콘텐츠 제작자와 협업을 통한 독점 상영, 첨단 기술 도입, 복합 문화 공간 전환, 그리고 팬덤을 겨냥한 커뮤니티 마케팅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CGV 미국 철수는 전 세계 극장 산업에 대한 전조에 불과할 것이다. OTT의 성장세를 ‘적’으로만 보지 말고, ‘동반자’와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는 전향적 전략 전환 없이는 ‘극장의 죽음’은 가속화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