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CEONEWS 대표기자
이재훈 CEONEWS 대표기자

[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거함' 삼성전자가 좌초 위기에 몰렸다.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에서의 실기나 중국의 맹추격 같은 외부의 파도가 아니다. 대한민국 초일류 기업이라는 타이타닉호의 선체 밑바닥에서, 바로 그 구성원들의 손에 의해 뚫린 '불신'이라는 거대한 구멍 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은 참담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12조 원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오너 일가가 1조 7천억 원의 주식을 고가에 팔아치웠다. 문제는 그 '엑시트(Exit)' 직전, 사측이 12만 임직원에게 '주가 20% 상승 시 주식 지급'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직원들의 매도 물량을 묶어 주가를 9만 원대로 방어하는 동안, 오너는 안전하게 현금을 확보했다. '사주는 팔고, 직원은 묶였다'는 절규는 단순한 피해의식이 아니다. 12만 직원이 오너의 상속세 납부를 위해 '총알받이'로 동원되었다는 배신감이며, 이는 '기만'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사측은 "상속세 재원 마련은 불가피했고, 인센티브는 주주 가치 제고 목적"이라며 "우연의 일치"라고 항변한다. 12만 명의 지성을 가진 임직원들을 상대로 이토록 '순진한' 변명을 내놓는 오너 일가와 경영진의 오만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법적 책임을 떠나,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인재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도덕적 파산' 선고다.

그 대가는 즉각적이고 파괴적이다. 하루 1천 명씩 노조 가입자가 폭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경영진을 향한 12만 명의 '불신임 투표'다. 이재용 회장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열었던 노조 시대는, 이제 경영진의 자충수로 인해 '강성 노조'라는 거대한 암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이 회장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리스크'를 스스로 키운 셈이다.

지금 삼성은 반도체 라인 한 시간 멈추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신뢰'라는 핵심 동력 라인이 이미 멈춰 섰다. HBM의 주도권을 되찾고 '초격차'를 외친들, 등 뒤에서 불신과 분노의 화살이 날아드는 '내전' 상태에서 어느 장수가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공은 이재용 회장에게 돌아왔다. 12조 원의 상속세는 오너의 숙제이지, 직원들이 그 짐을 대신 질 이유가 없다. 이번 사태를 '불가피한 우연' 따위로 어물쩍 넘기려 한다면, 삼성전자는 '뉴 삼성'의 비전은커녕, 불신이라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파렴치한 변명이 아니라, 12만 직원의 찢긴 가슴을 향한 진심 어린 사죄와 책임 규명, 그리고 노조를 '관리 대상'이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항로 수정뿐이다. 그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무노조'의 족쇄가 풀린 자리에 '강성 노조'라는 더 큰 족쇄가 채워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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