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의 당근인가 VS 불신의 족쇄인가

[CEONEWS=박은하 기자] 삼성전자의 '55년 무노조 경영' 신화가 마침내 종언을 고했다. 최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창사 이래 첫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한 사건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거대한 균열의 진앙지는 놀랍게도 기본급 협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성과급', 구체적으로는 DX(가전·모바일) 부문의 'OPI 0% 사태'로 촉발된 '공정성'의 위기였다. 이 불씨는 단기 현금 보상인 OPI(초과이익성과급)를 넘어, 삼성의 보상 시스템 전체, 특히 'PSU(Performance Stock Unit, 성과연동 주식보상)'로 대표되는 장기 성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PSU는 일정 기간(통상 3년) 후의 경영 성과에 따라 임원 및 핵심 인재에게 주식을 지급하는, 삼성식 성과주의의 '정수(精髓)'로 불린다. 이 PSU로 대표되는 삼성의 성과 보상 시스템이 왜 '초격차의 엔진'이라는 사측의 명분과 '불투명한 족쇄'라는 노조의 반발 사이에서 극명하게 대립하는지, 그 팩트를 기반으로 검증한다.

■사측의 논리: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초격차 위한 '황금 수갑'

삼성 경영진에게 PSU와 OPI로 구성된 성과 보상 시스템은 포기할 수 없는 '경영권'의 핵심이자 '초격차 전략'의 동력원이다.

첫째, 글로벌 '인재 전쟁'의 필수 무기다. 반도체, AI, 모바일 시장은 지금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인텔, TSMC, 애플 등 글로벌 경쟁사들은 천문학적인 연봉과 스톡옵션을 제시하며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사측 입장에서 PSU는 이러한 '인재 유출'을 막는 가장 강력한 '황금 수갑(Golden Handcuffs)'이다. 3년 뒤의 성과를 담보로 한 주식 보상은 핵심 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미래를 일치시킨다.

둘째,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명확한 동기부여다. "월급은 노동의 대가지만, 성과급은 승리의 전리품"이라는 것이 사측의 기본 인식이다. PSU는 회사의 주가 및 장기 실적과 연동된다. 이는 임직원들이 단순한 '월급쟁이'를 넘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주인의식'의 촉매제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대원칙은 삼성의 DNA 그 자체이며, 이는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셋째, '신속한 경영'을 위한 효율성의 상징이다. 사측이 노조의 개입을 극도로 경계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성과 보상 기준의 설정은 시장 상황과 경영 전략에 따라 신속하고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 사측은 이 권한이 '노사 협상'의 영역으로 넘어갈 경우, 의사결정 속도가 저하되고 경영의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사협의회를 통한 '통보' 방식은, 비록 일방적일지언정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던 것이다.

■노조의 반론: "기준도 모르는 보상"… 불투명성이 낳은 '박탈감'

반면, 2만 8천 조합원을 등에 업은 '초기업노조' 전삼노에게 이 시스템은 '불공정'과 '불신'의 상징이다. 

첫째, '깜깜이 산정'이 불신의 핵심이다.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하면서까지 요구한 것은 단순히 '돈(6.5% 인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PSU든 OPI든, 노조와 구성원들은 자신의 성과가 어떤 '공식(Formula)'에 의해 평가받고 보상받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회사가 알아서 계산한다"는 식의 '깜깜이' 방식은, 설령 그 결과가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 '사업부 간 차별'이 분열을 조장한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DS(반도체)와 DX(모바일·가전)의 OPI 차별'은 이 시스템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다. 비록 DS가 적자 속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DX가 흑자를 냈음에도 0%를 받은 데에는 사측 나름의 복잡한 경영적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판단 기준'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상황에서, DX 부문 직원들이 느낀 것은 '공정한 보상'이 아닌 '일방적 희생'과 '극심한 박탈감'이었다. 이는 조직의 시너지를 저해하고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셋째, '노조 패싱'을 위한 관리의 수단이다. 노조는 사측이 '노사협의회'를 앞세워 성과급을 결정하는 방식 자체가 '노조 패싱'이라고 규정한다. 노조를 동등한 교섭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노조 입장에서 불투명한 성과 보상 시스템은, 결국 '보상'이라는 당근을 이용해 구성원을 길들이고 노조의 교섭력을 무력화하려는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

■[팩트체크] 양측 주장의 허와 실

그렇다면 이 대립 구도 속에서 팩트는 무엇인가?

▲사측 논리의 팩트

글로벌 인재 경쟁이 치열한 것은 사실이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은 RSU(Restricted Stock Unit) 등 주식 기반 보상을 적극 활용하며, 삼성의 PSU도 이와 유사한 글로벌 스탠다드다. 또한 성과 보상의 차등 지급은 효율성을 높이는 합리적 수단이다. 하지만 간과된 사실을 들여다보면 글로벌 기업들의 주식 보상은 '투명한 공식'과 '예측 가능한 기준'을 전제로 한다. 구글, 애플 등은 PSU나 RSU의 지급 조건을 명확히 공개하며, 직원들은 자신의 성과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삼성의 PSU는 산정 기준이 불투명하고, 직원들은 '결과'만 통보받는다. '성과주의'가 작동하려면 '룰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노조 논리의 팩트

DX 부문의 OPI 0% 사태는 실제로 발생했고, 구성원들의 박탈감은 현실이다.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정보 부족은 불신을 낳았으며, 이는 노조 가입률 급증과 쟁의 찬성률 74%라는 수치로 입증된다. 하지만 간과된 사실이 있다. 기업의 모든 경영 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다. 특히 사업부별 투자 전략, 미래 수익 전망 등은 경쟁사에 노출될 경우 치명적이다. 또한 성과 보상을 '노사 교섭'의 대상으로 전환할 경우, 의사결정 지연은 불가피하다. 노조의 요구가 '투명성'에 그칠지, '경영권 침해'로 확대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진단] 'PSU'의 'P'는 Performance인가, Politics인가

결국 삼성의 성과 보상 시스템 논란은 'HR(인사)'의 이슈를 넘어, 이재용 회장이 선포한 '뉴 삼성'의 '거버넌스(Governance)' 이슈로 직결된다. 사측은 PSU의 'P'가 'Performance(성과)'라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Politics(사내 정치)' 혹은 'Passivity(노조 수동화)'라고 반박하는 형국이다. '초일류 기업'이라는 명성 뒤에 가려졌던 '소통의 부재'와 '불투명한 의사결정'이라는 민낯이 '초기업노조'의 등장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삼성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과거처럼 '회사를 믿고 따르라'는 '관리'의 논리로 이 위기를 봉합하려 한다면, 55년 만에 확보된 노조의 쟁의권은 더 큰 경영 리스크로 되돌아올 것이다.

'뉴 삼성'이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이제 그 '깜깜이 상자'를 열어야 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가 아닌 '합리적 룰'의 확립이다. 신뢰 없이는 어떠한 동기부여 시스템도 작동할 수 없다. 삼성이 '초격차 기술'을 넘어 '초일류 노사관계'라는 더 어려운 시험대에 올랐다. 그 첫 번째 답안지는 바로 이 'PSU'와 'OPI'의 투명성 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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