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족쇄' 벗은 카카오의 비상 기대
경영 정상화 기대감 속 본질적 과제는 산적
기업인 옥죄기의 사회적 비용은 누가 책임지나
[CEONEWS=지난 10월 21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동훈 부장판사)가 선고한 판결은 단순한 한 기업인의 무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검찰이 징역 15년을 구형한 중대 사건에서 나온 전면 무죄 판결은 한국 기업 생태계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단순한 경제 사건이 아니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네이버 출신 인사들이 장관과 청와대 수석에 잇달아 임명되는 동안, 경쟁사 카카오의 창업자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신세가 됐다. IT 업계와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체감했고, 이번 판결은 그 균형추를 일정 부분 되돌려 놓은 셈이 됐다. 김범수 의장의 무죄가 한국 기업 생태계에 던지는 법적·산업적 메시지는 무엇이며,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카카오는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리고 반복되는 '기업인 옥죄기'의 사회적 비용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별건 수사로 얻은 허위 진술"… 법원의 이례적 질타
이번 무죄 판결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 방식 자체에 대한 법원의 강력한 제동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별다른 관련성이 없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 피의자나 관련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술을 얻어내는 수사 방식은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수사 주체가 어디가 되든 이제는 지양되었으면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이 지목한 것은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이었다.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이 "극심한 압박을 받아 사실과 다른 허위 진술을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별건 수사로 핵심 관계자를 압박해 얻어낸 진술을 토대로 그룹 총수에게 중형을 구형했다는 것이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수사 관행 자체를 이처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4년 넘게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로 재판받다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 회장 역시 1, 2심 무죄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경영 활동은 극도로 제약됐다. 기업 총수를 법정에 세우는 것만으로도 경영 위축이라는 효과를 거두는 듯한 검찰의 행태가 또다시 사법부에 의해 부정된 것이다.
■시세조종 인정의 높은 법적 벽, M&A 시장에 던지는 의미
법적 관점에서도 이번 판결은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시세조종 혐의가 인정되려면 단순히 대규모 지분 매입이나 그로 인한 주가 상승이라는 '현상'만으로는 부족하며, '인위적 조작의 목적'과 '구체적이고 정교한 공모 정황'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M&A 과정에서 경쟁사의 지분 취득을 방어하기 위한 매수는 정당한 경영 판단의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향후 기업들의 경영권 분쟁이나 M&A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식 매수 행위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경영 판단의 일환으로 이뤄진 주식 매입을 검찰이 자의적으로 주가 조작으로 엮어 기소하는 관행에 일정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며 "M&A 시장의 법적 예측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카카오뱅크 지배력 유지… 최악의 시나리오 회피
김범수 의장의 무죄 판결로 카카오 그룹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카카오뱅크 지배력 상실'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점이다. 만약 김 의장이 금융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금융지주 및 은행 지분 관련 규제에 따라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적격성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이는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이자 미래 금융 전략의 심장을 잃는 것과 다름없었다. 무죄 판결로 카카오뱅크를 둘러싼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소멸됐고, 이는 그룹 경영 안정화에 결정적 청신호다. 금융권 한 애널리스트는 "카카오뱅크는 연간 수천억원대 순이익을 내는 효자 계열사"라며 "지배력 상실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그룹 차원의 장기 전략 수립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주가도 즉각 반응했다. 무죄 판결 직후 카카오 주가는 급등했고, 시장에서는 그동안 억눌렸던 밸류에이션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왔다. 카카오는 최근 AI, 콘텐츠, 모빌리티 등 신사업 중심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면서 본연의 사업 전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시장의 냉정한 평가… '카톡 개편' 논란이 시험대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냉정하다. 법적 리스크가 해소됐다고 해서 카카오의 본질적 과제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최근 대대적 개편은 이용자들의 거센 비판과 실망감에 부딪혔다. 광고 노출 확대와 불편한 UI 변경으로 사용자 경험이 악화됐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일부 이용자들은 대체 메신저로의 이탈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톡은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국민 인프라"라며 "법정에서 결백을 증명한 김범수 의장이 이제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카카오가 추진 중인 AI 전략의 성과도 아직 불투명하다. 생성형 AI 시장에서 네이버, 구글, MS 등 글로벌 빅테크들과의 경쟁은 치열하다. 콘텐츠 부문 역시 멜론의 시장 점유율 하락, SM엔터 인수 무산 등 악재가 겹쳤다. 결국 김범수 의장은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났지만, 이제는 더 본질적인 '시장 리스크'와 '경영 리스크'를 정면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죄 판결은 새로운 시작일 뿐,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 관행 없애야
이재용, 그리고 김범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거대 플랫폼 기업의 총수가 검찰의 기소로 수년간 막대한 경영 자원을 재판에 쏟아부었고, 결국 '무죄'를 받았다. 이는 기업인 옥죄기가 기업 생태계를 얼마나 왜곡시키고 성장의 골든타임을 앗아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비극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 역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으며 출국 금지 상태에 묶여 있다. 방탄소년단(BTS)을 성공시킨 K-POP의 대부가 정작 BTS의 월드투어에 동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방 의장 역시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그가 잃어버린 시간과 천문학적 기회비용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 경제학자는 "기업 총수가 재판에 몰두하는 동안 기업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게 된다"며 "이로 인한 기회비용과 국가 경제의 손실은 측정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경제 정의'를 내세우지만, 그 칼날이 무뎌지거나 방향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무죄 판결이 나와도 기업인이 잃어버린 시간과 기업이 놓친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재판 과정에서 소진된 사회적 자원과 훼손된 기업 가치 역시 복구되지 않는다.
■이제는 혁신으로 답할 차례
김범수 의장의 무죄 판결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하나의 계기이자, 검찰의 무리한 기소 관행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기록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는 한국 기업 생태계가 얼마나 취약한 법적 환경 속에서 경영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제 공은 카카오에게 넘어갔다. 사법 리스크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난 카카오가 혁신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차례다. 김범수 의장은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장에서 리더십을 증명하는 일이다. 카카오톡의 사용자 경험 개선, AI 전략의 실질적 성과, 콘텐츠 경쟁력 강화, 모빌리티 사업의 수익성 확보 등 산적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죄 판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김범수 의장과 카카오가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IT 생태계의 미래 지형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업인을 법정에 세우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경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정한 경쟁 환경과 예측 가능한 법 집행, 그리고 무엇보다 혁신을 통한 시장의 평가가 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근본적 해법이다. 김범수 의장의 무죄 판결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