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예탁금 80조·외국인 7조 순매수... '강력한 유동성' 증시 견인
韓 증시 '상대적 저평가' 매력 부각
'홈바이어스' 속 펀더멘털 개선이 관건
[CEONEWS=전영선 기자] 코스피가 마침내 3800선을 돌파하며 안착했다. '박스피'라는 오명을 씻고 2800선부터 가파르게 이어진 랠리는 국내 투자심리를 '겨울'에서 '여름'으로 단숨에 바꿔놓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인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국내 증시가 강력한 모멘텀을 확인하면서, 시장의 시선은 이제 '꿈의 숫자'로 불리는 'KOSPI 5000' 시대를 향하고 있다. 최근의 상승장은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강력한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다. 코스피 3800 돌파와 함께 투자자예탁금은 80조 원을 돌파하며 '총알'을 장전했고, 신용거래융자(빚투) 잔고 역시 24조 원을 넘어서며 과열 우려 속에서도 공격적인 투자 심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CEONEWS는 현재의 뜨거운 국내 증시 현황을 글로벌 시장과 비교 분석하고, 팩트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KOSPI 5000 시대'의 실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진단한다.
■'홈바이어스'에 불붙은 韓 증시: 유동성과 심리의 합작
현재 국내 증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압도적인 자금 유입'이다. 시장이 2800선에서 3800선까지 회복하는 과정에서, 특히 국내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로의 자금 쏠림은 폭발적이다. 최근 한 달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주 중심의 국내 ETF에 유입된 자금은 8000억 원을 상회한다. 이는 같은 기간 해외주식형 ETF 유입액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과거 '서학 개미'로 불리며 미국 증시로 향했던 자금이 국내로 유턴하는, 이른바 '홈바이어스(자국 편향)'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된다.
첫째, 해외 증시에 대한 부담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 우려, 이미 높은 밸류에이션에 도달한 미국 빅테크 주식에 대한 피로감이 작용했다. 나스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고점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보다 안전한 투자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둘째, 국내 시장의 '상대적 저평가'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확산됐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은 "이젠 한국 증시도 재평가받을 때가 되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증권가가 코스피 상단 전망치를 '4000 돌파'까지 상향 조정한 것도 이러한 낙관론을 반영한다. 과거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짓눌려 있던 국내 증시가, 정부 정책과 투자자 심리 변화에 힘입어 새로운 가치 재평가의 국면에 진입했다는 해석이다. 투자자예탁금 80조 원 돌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는 개인 투자자들이 '대기 자금'을 충분히 확보한 채 언제든 추가 매수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신용거래융자 잔고 24조 원 역시 과열 신호인 동시에, 시장의 상승 모멘텀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반증이다.
■돌아온 외국인, 韓 반도체에 '베팅'
개인 투자자의 유동성만으로는 3800선 돌파를 설명하기 어렵다. 결정적인 견인차는 '외국인'이었다. 데이터에 따르면 9월 이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7조 원 이상을 순매수하며 랠리를 주도했다. 이는 기관의 매수세 확대와 더불어 시장의 '체력' 자체가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과거 외국인의 순매도가 코스피의 발목을 잡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구도다. 외국인의 '픽(Pick)'은 명확하다. 바로 '반도체'다. AI(인공지능)발(發) 수요 폭증으로 인한 메모리 업황 개선 기대감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를 밀어 올렸고, 이는 코스피 전체의 상승을 이끌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납품 확대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 시그널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강력한 매수 근거를 제공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과의 비교에서도 뚜렷한 차별점이다. 미국 증시가 AI 소프트웨어 기업(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집중하는 동안, 한국 증시는 AI 구현의 핵심 하드웨어인 'HBM' 등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으로 재부각됐다.
"미중 무역갈등 완화" 기류 역시 글로벌 교역에 민감한 한국 수출 대기업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 미국의 對중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 움직임 등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을 밝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현재 국내 증시는 풍부한 국내 유동성(예탁금 80조), 외국인의 강력한 순매수(7조 이상), 반도체 업황 개선(펀더멘털), 정부 정책 기대(밸류업)라는 네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과거 어느 상승장과도 다른, 구조적이고 지속 가능한 랠리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KOSPI 5000'으로 가는 길: 글로벌 변수와 펀더멘털의 이중주
KOSPI 3800 돌파가 '유동성'과 '기대감'의 영역이었다면, 5000 시대로의 도약은 '실적'과 '구조적 변화'의 영역이다. 여기서부터는 냉정한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
데이터에서 보듯, 한국 증시의 '저평가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KOSPI의 PBR이 여전히 1배 내외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실질적인 주주환원(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으로 이어질 경우 주가 상승 여력(Upside)이 타 시장 대비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미국 증시의 PER이 20배를 상회하는 가운데, KOSPI의 10~12배 수준은 '가격 메리트'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만약 한국 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친다면, PBR 1배를 넘어 1.5배, 나아가 2배 수준까지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하지만 KOSPI 5000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핵심 조건에 달려있다.
첫째, 반도체를 넘어서는 '펀더멘털의 확장'이다. 현재의 랠리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대한 기대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KOSPI가 5000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바이오, 2차전지, 금융 등 여타 핵심 산업들의 실적이 동반 개선되는 '실적 장세'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만약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거나 글로벌 AI 투자가 주춤할 경우, 시장은 동력을 잃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경쟁력,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배터리 수주,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시밀러 성과 등이 동반 상승해야 진정한 '전 산업 랠리'가 가능하다.
둘째, '글로벌 통화정책'이라는 거대한 파도다. 국내 투자심리가 아무리 뜨겁고 외국인 매수세가 강하더라도,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성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현재 시장은 "미중 무역갈등 완화" 등 긍정적 시그널에 환호하고 있지만, 만약 미국 물가가 다시 불안정해져 '더 높은 금리(Higher for longer)' 기조가 현실화된다면, 글로벌 유동성은 빠르게 위축될 수 있다. 이는 KOSPI 3800을 지탱하는 '유동성'과 '외국인 순매수'라는 두 기둥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가장 큰 외부 변수다.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과 속도, 중국 경기 회복 여부, 유럽의 재정 건전성 등 한국 증시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이 산재해 있다. 국내 요인으로는 가계부채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신용거래융자 24조 원은 시장 과열의 신호이자, 급격한 조정 시 연쇄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뇌관이기도 하다. 부동산 시장과 연계된 가계부채 리스크가 증시로 전이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기대는 현실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관건
코스피 3800선 돌파는 이재명 정부 하에서 국내 증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투자자예탁금 80조 원과 '빚투' 24조 원이 증명하듯 시장의 에너지는 임계점을 넘어섰으며, 외국인 역시 7조 원대 순매수로 화답했다. '홈바이어스' 현상은 국내 증시의 '상대적 저평가' 매력이 글로벌 '고평가' 부담을 이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KOSPI 5000 시대'는 단순히 유동성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이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직결된 문제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기업들의 실질적인 주주환원 강화와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반도체에 편중된 랠리가 전 산업의 실적 개선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증권가는 "KOSPI 5000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낙관론자들은 2026년까지, 보수적인 전망으로는 2027~2028년까지 5000선 도달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연평균 15~20%의 상승률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KOSPI 5000으로 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높지만, 글로벌 금리 변동성, 경기 사이클이라는 안개 역시 짙다. 3800선에서 확인된 투자자들의 열망과 정부의 정책 의지가 글로벌 불확실성을 뚫고 한국 증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지, 시장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꿈의 숫자' KOSPI 5000, 그 꿈이 현실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 답은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어내는 데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