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 등극… '비(非)세습·극우' 신조의 정치인
아베의 정치적 계승자, '다카이치노믹스'와 '강한 일본' 선언
"총리돼도 야스쿠니 참배" 공언… 얼어붙는 한일 관계, '시계 제로'의 전망
[CEONEWS=배준철 기자] 2025년 10월 21일, 일본 140년 헌정사의 견고했던 '유리 천장'이 깨졌다. 일본 중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64) 자민당 총재를 제104대 총리로 선출했다. 이로써 일본은 주요 7개국(G7) 중 마지막으로 여성 정상을 배출한 국가가 되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1년 만에 단명으로 물러난 혼란 속에서, 그녀는 '일본 최초'라는 역사를 썼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 주변국의 우려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녀의 등극은 단순한 '첫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을 넘어,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는 '극우 강경 노선'의 본격적인 부활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CEONEWS 스페셜리더 45화는 '일본의 마거릿 대처'를 꿈꾸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의 성공 스토리와 그가 몰고 올 '강한 일본'의 명암, 그리고 한일 관계의 향방을 심층 진단한다.
■ '비세습·여성'의 한계를 돌파한 아베의 계승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정치 역정은 '이단아'와 '집념'으로 요약된다. 1961년 나라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소 다로, 아베 신조 등 쟁쟁한 '세습 귀족'들이 즐비한 자민당에서 드물게 자수성가한 '비(非)세습' 정치인이다. 고베대를 졸업한 그는 정계 입문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정경숙'을 거쳐,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의 보좌관 생활로 정치 실무를 익혔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방송 캐스터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뒤, 1993년 무소속으로 중의원에 첫 입성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자민당에 입당한 그는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인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만나면서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아베는 자신과 이념을 공유하는 그를 일찌감치 차기 주자로 낙점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다카이치는 아베 내각에서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그리고 기시다 내각에서 신설된 경제안보담당상을 역임하며 '정책통'이자 '강경파'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의 총리 도전은 집요했다. 2021년 3위, 2024년 9월 이시바에게 밀려 2위로 낙선했으나, 불과 1년 만에 이시바 정권이 무너지자 다시 기회를 잡았다. 지난 10월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 183표로 1위를 차지한 뒤 결선투표에서도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54 대 46의 득표율로 누르며 승리했다. 그는 "아베 전 총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겠다"며 총리직에 올랐다. 그의 성공은 철저한 이념 무장과 '아베 키즈'라는 강력한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여성'과 '비세습'이라는 약점을 돌파한 결과다.
■'다카이치노믹스'와 '일본 퍼스트'의 선언
다카이치 내각의 향후 국정 운영은 '경제'와 '안보' 두 축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경제: 아베노믹스 계승과 '일하는 내각'
경제적으로 그는 아베노믹스의 계승을 표방하는 '다카이치노믹스'를 내걸었다. 이는 공격적인 재정지출과 금융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일하는 내각'을 선언하며 "워크-라이프 밸런스라는 단어를 버리겠다"고 공언할 만큼, 그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그가 총리로 선출된 직후 도쿄 증시 대표 지수인 닛케이 225는 1.9% 이상 급등하며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정치적 불안 요소가 해소되고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하는 투자 심리의 반영이다.
▲안보: '평화헌법 9조 개정'과 군사력 강화
하지만 그녀의 본질은 '안보 매파(Hawk)'에 있다. 그는 '일본 퍼스트'를 외치며,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들기 위한 '평화헌법 9조 개정'을 정치적 숙원으로 삼고 있다. 방위비 증액은 물론, 적 기지를 선제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의 실질적 강화를 추진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는 일본유신회와의 연립정권 수립으로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자민당의 오랜 파트너였던 온건파 공명당이 정치자금 문제로 연정에서 이탈하면서, 26년간 이어진 자민당-공명당 연립 시대는 막을 내렸다. 대신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강경 보수 성향의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으면서 그의 우경화 정책은 거침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첫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젠더 이슈에는 보수적이다. 그는 선거 기간 여성 대표성 강화를 약속했지만, 정작 내각에 임명된 여성은 단 2명에 불과했다. "부부 별성(姓) 제도" 반대, 동성결혼 반대 등 전통적 가족관을 옹호하며, 진보적 여성 정책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한일 관계 전망: '예측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
다카이치 총리의 등극으로 한일 관계는 '시계 제로' 상태에 빠져들었다. 기시다-이시바 정권에서 이어지던 관계 개선의 모멘텀은 사실상 동력을 상실하고, '강 대 강' 대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역사수정주의와 야스쿠니 참배
그는 자민당 내에서도 가장 강경한 역사수정주의자로 꼽힌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되어도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공언해왔으며,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과 같은 전쟁 범죄를 공공연히 부정해왔다. 2002년 TV 프로그램에서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전쟁이 자위 전쟁이었다"고 답했고, 2024년 4월과 8월에는 국무대신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 그가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할 경우, 한중 양국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외교적 마찰은 피할 수 없다.
▲국수주의 단체와의 연계
다카이치는 일본 국수주의 단체인 '일본회의'의 일원이며, 2014년에는 극우 극단주의자들의 사무실 방문을 주최하기도 했다. 또한 히틀러의 선거 전략을 지지하는 광고에 실린 사진이 공개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
▲대중 강경 노선
외교 정책에서는 확고한 대중 강경파로 간주된다.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 등 경제 관행을 비판하며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지지했다. 미국이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센카쿠 열도 분쟁의 일환으로 중국이 배치한 해양 부표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 관계의 변수
다만, 그가 당면한 국내 정치 상황이 변수다. 연립정권의 기반이 불안하고 경제 회복이 시급한 상황에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이념적 신념을 밀어붙일지는 미지수다. 흥미롭게도 총재 당선 직후 한국 고위 외교관과의 대화에서 한일관계와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이전에 비해 강경 색채를 어느 정도 완화한 모습을 보였다. 취임 직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보류했는데, 일본 교도통신은 이를 한국, 중국의 반발을 우려한 행보로 해석했다.
■'여성 총리'보다 무거운 '극우 총리'의 실체
'최초의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그의 등장은 일본 정치사의 새 장을 열었지만, '아베의 유산'을 짊어진 그가 선택할 '강한 일본'의 길은 동북아 정세에 예측 불가능한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아베노믹스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시가 상승했지만, 주변국들의 시선은 차갑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그의 역사수정주의와 야스쿠니 참배 공언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카이치 내각의 성공 여부는 두 가지 균형에 달려있다. 첫째, 경제 성장과 안보 강화라는 국내 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결하느냐. 둘째, 이념적 신념과 외교적 현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보다 '극우 총리'라는 실체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일본은 140년 만에 유리 천장을 깨트렸지만, 그 천장 너머에는 더 험난한 국제 정치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과연 '일본의 마거릿 대처'가 될지, 아니면 '아베의 그림자'에 머물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