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영' 종료...그러나 다시 시작된  '입법 경영'
총수 구속의 나비효과... 삼성 파운드리는 어떻게 TSMC에 완패했나
EUV 도박과 수율 재앙...삼성이 TSMC에 내준 결정적 한 방
이재용 복귀 효과의 첫 증거... 엑시노스 2500이 증명하는 리더십의 힘
개별 사법리스크에서 제도적 사법리스크로 ...상법개정안이 완성하는 기업 통제 시스템
삼성의 교훈, 대한민국의 선택 ...기업을 옭아맬 것인가,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CEONEWS=박수남 기자]2025년 7월 17일 대법원 최종 무죄 확정으로 10년간의 사법 리스크가 종료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총수 부재 시기 동안 벌어진 조직문화 변질과 기술 경쟁력 저하, 그리고 이미 시행된 상법 개정안이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뉴 삼성'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검찰 경영' 종료...그러나 다시 시작된  '입법 경영'

2025년 7월 17일. 대한민국 사법사와 산업사에 기록될 한 판결이 내려졌다. 10년에 걸친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관련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인의 개인적 혐의를 벗는 차원을 넘어선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대표 기업의 발목을 잡고 글로벌 경쟁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든 '사법 리스크'라는 거대한 족쇄가 마침내 풀렸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검찰이 제기한 23개 공소사실 전부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무죄로 판단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사건이 단순한 법리 다툼이 아니라 국가의 공권력이 기업 경영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그 향방을 뒤흔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법원의 판결 요지는 검찰의 기소 논리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재판부는 두 회사의 합병이 오직 '경영권 승계'라는 단일하고 부정한 목적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합병에는 불안정한 사업구조 개선, 신사업 동력 확보 등 다양한 경영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총수의 사익을 위한 불법 행위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본질적 활동인 인수합병(M&A)과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복잡한 의사결정을 검찰이 '승계'라는 단일 프레임으로 재단하려 했던 시도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 10년간의 사법 리스크는 '검찰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prosecution)'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한 기업의 명운을 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수사와 재판이라는 외부 변수에 의해 좌우되고, 총수는 잠재적 피의자 신분으로 경영의 최전선에서 사실상 격리되었다. 따라서 이번 무죄 판결은 단순히 이재용 회장의 법적 족쇄를 푼 것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삼성이 지난 10년간 왜 표류해야 했는지를 되돌아보고,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총수 구속의 나비효과... 삼성 파운드리는 어떻게 TSMC에 완패했나

2017년 2월, 이재용 회장의 구속은 삼성이라는 거함의 항해 방향을 결정하는 조타실에 거대한 공백을 만들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 신화에 이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지목된 파운드리 사업에 있어, 이 시점은 비극적 역사의 서막이었다. 리더십의 부재는 단순한 의사결정 지연을 넘어, 조직의 문화와 전략적 방향성 자체를 왜곡시켰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한때 세계 1위 TSMC를 맹추격하던 삼성 파운드리는 불과 몇 년 만에 추격 불가능한 격차로 뒤처지며 '잃어버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분기점은 데이터로 명확히 드러난다.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되기 직전, 삼성 파운드리는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 면에서 TSMC와 유의미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2017년을 기점으로 두 기업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수치는 냉정하다. 2019년 35%p였던 점유율 격차는 2022년 43%p로 벌어졌고, 급기야 2025년 1분기에는 59.9%p라는 절망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삼성의 점유율은 집계 이래 최저치인 7%대로 추락했다. 이는 점진적 하락이 아닌 '붕괴'에 가깝다. 이 기간은 이재용 회장의 구속과 재판이 진행되며 삼성의 경영 시계가 멈춰버린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붕괴의 근원은 리더십의 공백이 초래한 조직 문화의 변질에서 찾아야 한다.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이전, 권오현 전 부회장이 이끌던 삼성 반도체는 '워크 스마트(Work Smart)'를 기치로 내걸고 엔지니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권 전 부회장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의 한계를 일찌감치 깨닫고 팀 단위의 자율성을 부여했으며, 덕분에 하위 설계팀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문화는 세계 최초 FinFET, HKMG 공정 도입과 같은 혁신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2018년 12월,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DS부문 수장을 맡은 김기남 부회장 체제하에서 삼성의 조직 문화는 180도 달라졌다. 디테일에 집착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은 하위 조직의 자율성을 급격히 위축시켰다. 혁신과 실험 대신 보고와 검증이 조직을 지배했고, 의사결정은 지연되다 못해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리더십의 변화는 단순히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기업의 '리스크 대응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리스크 프로파일의 역전(Risk Profile Inversion)' 현상을 초래했다. 반도체와 같은 하이테크 산업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계산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것, 즉 '안주'다. 권오현-이재용 체제에서는 시장 리더십 확보를 위해 과감한 '기술적 리스크'를 감수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총수가 부재하고 경직된 관료주의가 팽배해지자, 조직은 '기술적 리스크'보다 '커리어 리스크'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8년의 7나노 공정 전략 실패는 필연적이었다. 삼성은 당시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세계 최초로 7나노 공정에 전면 도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반면 TSMC는 기존의 성숙한 ArF(불화아르곤) 액침(Immersion) 기술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7나노 시장을 선점한 후, 다음 공정에서 EUV를 도입하는 실용적인 전략을 택했다. 삼성의 선택은 그 자체로 나쁜 결정이었다기보다, 그 리스크를 관리할 리더십이 부재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EUV 도박과 수율 재앙...삼성이 TSMC에 내준 결정적 한 방

리더십의 공백이 낳은 전략적 표류는 곧바로 운영상의 실패로 이어졌다. 기술적 재앙, 핵심 고객의 대규모 이탈, 그리고 시장 신뢰의 완전한 붕괴라는 삼중고가 삼성 파운드리를 덮쳤다. 이는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한때 TSMC의 유일한 대항마로 여겨졌던 기업을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실패의 핵심에는 '수율(Yield) 재앙'이 있었다. 수율은 웨이퍼 한 장에서 생산되는 양품 칩의 비율로, 파운드리 사업의 수익성과 기술력을 가늠하는 가장 직접적인 척도다. 삼성은 특히 7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에서 처참한 수율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

그 정점은 4나노 공정의 실패였다. 퀄컴의 플래그십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스냅드래곤 8 1세대'와 삼성의 자체 AP '엑시노스 2200' 생산에 사용된 이 공정은 삼성 파운드리 역사상 최악의 악몽으로 기록된다. 업계에서는 당시 삼성 4나노 공정의 수율이 35% 수준에 불과했던 반면, 경쟁사인 TSMC는 동일 노드에서 70% 이상의 안정적인 수율을 기록했다고 분석한다.

이 4나노 하드웨어의 실패는 곧바로 삼성전자 전체를 뒤흔든 'GOS(Game Optimizing Service) 사태'로 비화했다. GOS는 본래 게임 실행 시 기기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지만, 당시 갤럭시 S22에 탑재된 4나노 칩의 발열과 전력 효율이 워낙 심각하자 삼성은 GOS를 이용해 강제로 스마트폰의 성능을 60% 수준까지 저하시켰다. 이는 명백한 소비자 기만이었고, 삼성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브랜드인 '갤럭시'의 명성에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혔다.

3나노 공정에서도 비극은 반복됐다. 삼성은 세계 최초로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 기술을 3나노에 적용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낮은 수율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능으로 인해 대형 고객사를 유치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TSMC의 3나노 수율이 삼성보다 최대 4배가량 높고, 전력 효율 역시 10~20% 우수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공허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최초'가 아니라 '최고'의 성능과 안정성이었다.

기술적 실패와 신뢰 붕괴는 곧바로 '고객 엑소더스'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스마트폰 AP 시장의 절대강자 퀄컴은 스냅드래곤 8 1세대의 처참한 실패 이후, 차기작부터 생산 전량을 TSMC에 맡기며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자체 칩 '텐서'로 AI 시대를 준비하던 구글 역시 초기 파트너였던 삼성을 등지고 차세대 칩 생산을 TSMC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AMD마저 삼성 4나노 공정 활용 계획을 철회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한때 삼성의 고객사였거나 잠재 고객이었던 거의 모든 '대어'들이 TSMC로 떠나갔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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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복귀 효과의 첫 증거... 엑시노스 2500이 증명하는 리더십의 힘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변화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2025년 6월 24일 삼성전자가 공개한 '엑시노스 2500'은 단순한 새 칩셋 출시를 넘어, 삼성 파운드리 기술력 회복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이 칩셋은 삼성 파운드리의 3나노 GAA 공정을 최초로 적용한 스마트폰용 AP로서,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수율과 성능 이슈를 해결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엑시노스 2500은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가 설계하고 파운드리 사업부가 2세대 3나노 GAA 공정으로 생산하는 첫 번째 칩셋이다. 전작 대비 인공지능(AI) 연산 성능과 전력 효율, 제조 안정성 측면에서 큰 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벤치마크 사이트 긱벤치에 등장한 갤럭시 Z 플립7 글로벌 모델의 성능 점수는 싱글코어 2356점, 멀티코어 8076점으로, 이전보다 개선된 수치를 기록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가 엑시노스 2500을 '대량 양산'(Mass production) 상태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칩을 대량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수율이 올라온 것으로 해석된다. 엑시노스 2500이 갤럭시 Z 플립7에 전량 탑재될 것으로 알려진 점도 삼성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갤럭시 플립·폴드 시리즈에 퀄컴의 스냅드래곤 칩셋을 탑재해왔지만, 이번에는 자체 칩셋으로 완전히 전환한 것이다.

파운드리 사업부의 리더십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2024년 11월 27일 한진만 사장이 새로운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임명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 사장은 2024년 12월 9일 임직원에게 보낸 첫 메시지에서 "타 대형 업체에 비해 뒤처지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현실을 직시하는 솔직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엔지니어들이 실험과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며, 보고와 절차에만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못했던 과거 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과거 권오현 부회장 시절의 자율과 창의를 중시하던 문화로의 회귀를 시사하는 중요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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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사법리스크에서 제도적 사법리스크로 ...상법개정안이 완성하는 기업 통제 시스템

이재용 회장을 옭아맸던 사법 리스크가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에 가해진 '개별적 족쇄'였다면, 2025년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현재 시행 중인 상법 개정안은 대한민국 기업 전체의 발목에 채워진 '제도적 족쇄'가 되고 있다. 그 취지는 소수 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실질은 기업의 전략적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경영을 마비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독소 조항들로 가득하다.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 핵심 조항에 집중된다. 첫째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하고 있었지만, 개정안은 이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언뜻 보면 주주 권익을 강화하는 합리적인 조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업 경영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주주'는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아니다. 30년 후의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연기금, 3개월 내 주가 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단기 시세 변동에 민감한 개인 투자자 등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천차만별이며 때로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조항이 현실화되면서, 이사회는 잠재적인 배임 소송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장의 주가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대규모 R&D 투자나 장기적인 관점의 M&A는 언제든 '일부 주주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사들은 혁신적이고 과감한 도전 대신,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의사결정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다.

둘째는 '3% 룰'로 대표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이 제도는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기업 경영권을 노리는 해외 투기자본, 즉 '기업 사냥꾼'에게는 활짝 열린 대문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2018년 현대자동차그룹을 공격했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같은 세력들은 지분 쪼개기 등을 통해 손쉽게 이사회에 진입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상법 개정안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작동 원리와 충돌하는 근본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기업 경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미래를 향한 과감한 투자를 결단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이러한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고, 경영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가장 공격적이고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에게 경영 개입의 합법적 무기를 쥐여주었다.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6] 삼성 파운드리가 증명한 '정치의 경제 지배'...상법개정안, 기업가정신에 내린 사형선고

삼성의 교훈, 대한민국의 선택 ...기업을 옭아맬 것인가,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10년의 사법 리스크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삼성 앞에 놓인 과제는 명확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초격차'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리더십의 복원'이다. 최종 무죄 판결로 모든 법적 족쇄를 벗어 던진 이재용 회장은 이제 더 이상 검찰의 기소나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기업의 미래와 글로벌 경쟁만을 생각하며 장기적인 관점의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삼성 내부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운드리 사업부의 리더십 교체와 전략 변화다. 경직된 관료주의의 상징이었던 과거 경영진이 물러나고, 기술 전문성을 갖춘 한진만 사장과 같은 새로운 리더들이 전면에 나섰다. 한 사장은 조직문화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고와 검증이 아닌 기술과 현장 중심의 조직 문화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이러한 리더십의 변화는 구체적인 전략 수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삼성은 2나노 공정 로드맵의 양산 시점을 일부 조정하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는 과거처럼 '세계 최초' 타이틀에 집착해 무리하게 기술을 시장에 내놓기보다, 안정적인 수율과 성능을 확보하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또한 첨단 공정뿐만 아니라 수요가 꾸준한 28나노 이상 레거시(성숙) 공정 사업을 강화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현실적인 전략을 채택했다.

삼성 파운드리의 부활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셈이다. 4나노와 3나노 공정의 수율을 조속히 안정시켜 퀄컴, 구글과 같이 떠나갔던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단기적인 최우선 과제다. 그리고 2025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2나노 GAA 공정은 반드시 '최초'가 아닌 '최고'의 기술로 시장에 선보여, TSMC와의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힐 결정적 한 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의 내부적인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삼성의 뼈아픈 경험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마지막 교훈은, 기업이 마음껏 뛰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제도적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논리와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한, 제2, 제3의 '잃어버린 10년'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이미 시행된 상법 개정안의 독소 조항들이 실제 기업 경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개정을 통해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을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삼성 파운드리의 재도전은 단순히 한 기업의 성패를 넘어, 대한민국이 자국의 경제 엔진을 계속해서 옭아맬 것인지, 아니면 그 족쇄를 풀어 글로벌 무대에서 다시 한번 도약할 기회를 줄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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