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심리만 '반짝'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신호탄인가
'지드래곤'과 '로봇 나비', 그리고 '26만 장 GPU'로 본 경제적 효과 분석
[CEONEWS=김소영 기자] 2025년 11월 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뉴스심리지수(ESI)가 4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주에서 막을 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의 '긍정 효과'가 수치로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AI 시대 예산안'이 발표된 이날, 이 소식은 한국 경제가 오랜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 새 시대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희망가처럼 들렸다. 하지만 '김소영 기자의 다른 시선'은 언제나 화려한 수사 뒤에 숨겨진 현실의 복잡한 층위를 파고든다. 과연 APEC 경주 회의는 단순한 '뉴스 심리'의 반짝 상승을 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국위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지드래곤'의 화려한 무대, '로봇 나비'의 미래지향적 전시, 그리고 '젠슨 황'의 GPU 26만 장 확보라는 가시적 성과.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냉철한 시선으로 APEC 경주 회의의 명과 암을 해부한다.
■국위선양의 축제, K-컬처와 AI 강국의 면모
이번 APEC 경주 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 브랜드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 중심에는 단연 빅뱅의 지드래곤(GD) 특별 공연이 있었다. 세계 각국 정상과 경제계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펼쳐진 GD의 무대는 K-POP이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한국의 역동적인 문화와 소프트 파워를 상징하는 강력한 아이콘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과거 국제회의에서는 특정 제품이나 기술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문화 콘텐츠 자체가 국위선양의 핵심 요소가 된 시대다. GD의 무대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나라'로 격상시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문화적 측면을 해소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로봇 나비'에서 'GPU 26만 장'까지, AI 강국의 신호탄
동시에 이번 APEC은 대한민국의 'AI 시대 G3(주요 3개국)' 위상 제고를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회의장 곳곳에 전시된 '로봇 나비' 등 첨단 기술 시연은 한국이 단순한 제조업 강국이 아니라, AI와 로봇공학 같은 미래 기술을 선도하는 혁신 국가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특히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방한하여 정부와 'GPU 26만 장 확보'를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소식은 상징적이다. 한국이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플레이어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이 26만 장의 GPU는 단순한 하드웨어 수량을 넘어, AI 시대 대한민국의 기술 주권과 산업 경쟁력을 담보하는 핵심 자산으로서 국내외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가능성, 신뢰와 비전의 재확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지정학적 리스크,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 등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한국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되는 현상이다. APEC과 같은 국제 정상회의는 이러한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첫째,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다. 북한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APEC을 통해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하는 핵심 국가임을 재확인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역내 주요국 정상들과의 양자 회담을 통해 경제 협력 강화와 안보 대화의 폭을 넓히는 것은 불확실성 감소에 기여한다.
둘째, '정책 예측 가능성' 강화다. 정부가 APEC이라는 국제 무대에서 AI 강국 비전을 선포하고 GPU 확보 같은 구체적 성과를 내보인 것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정책 방향이 명확하고 일관성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특히 AI 같은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국가적 집중은 장기 투자 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간접적 압력이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는 만큼, 기업들은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요구를 더욱 강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비록 APEC 자체에서 직접적인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춰야 한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뉴스심리지수 급등, 그 이면의 기대와 불안
뉴스심리지수가 4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이러한 복합적인 긍정 효과에 대한 시장의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 APEC이 제공한 '희망적인 뉴스'가 불확실성에 지쳐있던 경제 심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뉴스심리지수는 말 그대로 '심리'를 반영하는 지표다. 실물 경제의 펀더멘털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만 앞서 간다면, 그 반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2021년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에 급등했던 뉴스심리지수가 실제 경기 회복 속도와 괴리를 보이며 다시 하락했던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뉴스 심리' 너머의 현실, 미진한 부분과 과제
K-컬처의 위상 제고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경제 성과,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문화 콘텐츠를 넘어선 산업 전반의 구조적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인기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제작사의 수익성은 여전히 낮고, 창작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문화적 매력도가 높아진 만큼, 이를 바탕으로 한 투자 유치와 기술 협력의 실질적 성과로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문화 정책은 여전히 단기 이벤트 중심이며, 지속 가능한 생태계 구축에는 소홀하다.
또한 정부가 GPU 확보 같은 공급망 안정화에는 성공했지만, 그 GPU를 활용할 인재 양성, 그리고 AI 시대에 밀려날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은 여전히 미진하다. APEC에서 보여준 화려한 기술 시연 뒤에는, AI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로봇 나비는 날아올랐지만, AI에 의해 일자리를 잃을 수많은 노동자들은 어디로 날아가야 하는가. GPU 26만 장 확보는 고무적인 성과지만,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불안정성과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엔비디아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의존은 한국의 AI 주권을 오히려 제약할 수 있다. 또한 이 막대한 GPU 자원이 과연 국내 AI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소수 대기업에만 집중되어 'AI 독점'을 심화시킬지는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성과를 정치적 치적으로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산업 발전과 균형 성장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APEC의 '선언적 의미'를 넘어선 '실질적 합의'의 부족
APEC은 기본적으로 포럼 성격이 강하며, 구속력 있는 협정보다는 공동 성명 발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경주 회의에서 구체적인 자유무역협정 진전이나 역내 경제 통합 가속화를 위한 획기적인 합의가 도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미중 무역 갈등이 첨예화되는 상황에서, APEC이 실질적인 경제 협력의 플랫폼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사진 찍기용 행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선언을 넘어선 구체적인 경제 협력의 틀 마련과 이행이 필수적이다.
■수치로 본 APEC 효과, 그리고 남은 질문들
한국은행의 뉴스심리지수는 101.8을 기록하며 4년 3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제조업 가동률은 72.3%로 전년 동기 대비 0.8%포인트 하락했다. 수출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는 여전히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괴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APEC의 긍정 효과가 '뉴스'로는 강력하지만, '현실'로는 아직 체감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심리 개선이 실물 경제 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정부가 실질적인 경제 정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추진하느냐가 관건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숫자로 본 현실
한국 증시의 PER(주가수익비율)은 9.2배로 미국(20.5배), 일본(14.3배)은 물론 대만(15.8배)보다도 낮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APEC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적이다.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낮은 배당성향, 불투명한 지배구조. 이러한 문제들은 APEC 한 번으로 해결될 수 없다. 정부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개혁 의지, 그리고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영원히 한국 경제의 족쇄로 남을 것이다.
■APEC의 빛,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다른 시선'이 필요할 때
APEC 경주 회의는 분명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AI 강국으로서의 비전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드래곤의 무대와 로봇 나비, 젠슨 황의 GPU 확보 소식은 '뉴스 심리'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한국에 대한 글로벌 인식을 전환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소영 기자의 다른 시선'은 이 모든 화려한 성과 뒤에 감춰진 질문들을 던진다.
반짝이는 뉴스 심리가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구조적 개선은 충분한가. AI 시대의 명암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정부는 어떤 '다른 시선'으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양극화를 해소할 것인가. K-컬처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창작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언제 개선될 것인가.
이번 APEC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대한민국이 '선언된 AI 강국'을 넘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AI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APEC이 남긴 희망의 빛과 함께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직시하는 '다른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화려한 축제가 끝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가 아니라 성찰이다. APEC 효과가 '반짝'으로 끝날지, '신호탄'이 될지는 결국 우리 모두의 '다른 시선'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