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트레이드가 바꾼 글로벌 자산시장 지형도
[CEONEWS=배준철 기자] 2025년 하반기,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금 가격이 급락하고 미국 달러화는 강세를 회복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금 시장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이다. '강달러-약금' 현상의 배경과 이것이 자산시장에 던지는 의미, 그리고 투자 전략을 짚어본다.
■트럼프 재집권이 촉발한 달러 강세
이번 금값 급락과 달러 강세의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 확정이 자리한다. 시장은 그의 경제정책을 '고관세'와 '감세'로 요약하며 이에 반응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보편적 관세 부과는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대규모 감세 정책은 재정 적자를 확대시켜 국채 발행을 늘리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미국 금리가 높아지면 전 세계 자금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미국으로 유입된다. 이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급증하며 달러 가치가 상승한다. 실제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최근 106선을 돌파하며 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 외환 전문가는 "트럼프의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시장은 미국 우선주의가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자 없는 금의 매력 퇴색
달러 강세와 함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금이다. 국제 금값은 온스당 2,600달러 선이 무너지며 고점 대비 10% 가까운 낙폭을 기록했다. 금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이지만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이자나 배당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연 4.5%를 넘나들고 달러 예금만으로도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 보관 비용이 들고 이자 수익이 없는 금을 보유할 유인이 줄어든 것이다. 또한 달러 강세는 금 가격 하락을 부추긴다. 국제시장에서 금은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다른 통화 사용 국가의 투자자들에게 금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지게 되어 수요가 감소한다. 여기에 그동안 금 가격 상승을 견인했던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피로감도 작용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이 내성을 갖게 됐고, 트럼프 당선인이 전쟁 조기 종식 의지를 밝히면서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완화된 측면도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태도 변화도 금값 하락의 기폭제가 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미국 경제가 강하다"며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초 시장은 연준이 적극적으로 금리를 내릴 것으로 기대했다. 금리가 내려가면 일반적으로 달러 약세-금 강세 구도가 형성된다. 그러나 미국의 고용과 소비가 예상보다 견조하고, 트럼프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면서 금리 인하 경로가 불투명해졌다.
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금 시장을 지탱하던 기대감이 약화됐다"며 "당분간 금 가격은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엇갈리는 전망, 투자 전략은
전문가들의 단기 전망은 달러 강세 지속 쪽에 무게가 실린다. 월가 주요 투자은행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구체화되고 실제 집행되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수익성이 보장되는 달러와 미국 자산으로의 쏠림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금 가격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온스당 2,400달러 선까지 추가 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하지만 중장기 시각은 다르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이 결국 미국 경제에도 부담이 되어 경기 둔화를 야기할 수 있고, 막대한 재정 적자가 달러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금은 다시 '화폐 가치 하락의 방어 수단'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
한 시중은행 PB센터장은 "현재 금값 하락은 지난 1년간 급등에 따른 조정 성격이 짙다"며 "장기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는 여전히 금이 유효하다. 다만 바닥을 확인하는 과정이므로 섣부른 추격 매수보다 분할 매수로 접근하거나 달러 예금 비중을 적절히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흥국에는 위기 신호
달러 강세는 신흥국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달러로 빌린 외채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자본 유출 우려도 커진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 국가나 외환보유액이 취약한 국가들은 환율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강달러 기조가 지속되면 국내 물가와 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책 당국의 세심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연한 자산 배분이 관건
2025년 말, 글로벌 경제는 새로운 변화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킹달러'의 귀환은 신흥국에는 자본 유출 압력을, 투자자들에게는 자산 배분 재설계를 요구한다. 금이 약세를 보이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은 단순한 가격 등락이 아니라, 변화한 정치·경제 지형을 반영한다. 투자자들은 과거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트럼프 2.0 시대가 몰고 올 변화 속에서 달러와 금의 시소게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지금은 냉철하게 시장 신호를 읽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과거 안전자산의 대명사였던 금이 흔들리고, 달러가 다시 왕좌에 오른 이번 국면은 투자 환경이 얼마나 빠르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가지 자산에 올인하기보다 분산 투자와 리스크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