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한 건 SNS가 아닌 메신저"
AI·플랫폼 확장 명분에 잃어버린 '소통의 본질'… 수익성보다 공공성 고민해야 할 때
친구탭 개편부터 위치 공유 논란까지… 피로감 호소하는 사용자들
[CEONEWS=최재혁 기자]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흔들리고 있다.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4,797만 명.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이 거대한 플랫폼은 최근 두 달 사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카카오는 'AI 시대의 도약'과 '사용성 개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지만, 돌아온 것은 사용자의 냉담한 반응과 1점대 평점 테러였다. 본질인 '연락' 기능을 넘어 SNS와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진화하려는 카카오의 야심이, 정작 사용자에게는 '디지털 피로감'과 '사생활 침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왜 내 연락처가 SNS 피드가 되어야 하나"
지난 9월 단행된 카카오톡 개편의 핵심은 '친구탭'의 변화였다. 기존의 직관적인 전화번호부 형태의 목록 대신,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가 큼지막하게 노출되는 '피드형' UI가 도입됐다. 카카오 측은 "가벼운 소통을 위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체감한 현실은 달랐다. 업무상 저장해 둔 거래처 직원의 주말 골프 사진을 원치 않아도 봐야 하고, 내 소소한 일상이 불특정 다수의 '친구' 목록에 피드처럼 전시되는 상황은 메신저가 아닌 '강제적 SNS'에 가까웠다. "메신저가 인스타그램 흉내를 낸다", "업무용 연락처까지 사생활 정보로 노출되어 불편하다"는 불만이 쇄도했다. 여기에 신설된 숏폼 전용 공간인 '지금탭'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메신저 본연의 기능과 무관한 광고성 콘텐츠와 자극적인 영상들이 앱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카카오톡이 소통 도구가 아닌 '체류 시간 늘리기용' 광고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와이즈앱 데이터에 따르면 개편 후 체류 시간은 소폭 증가했으나, 이것이 서비스 만족도 향상이 아닌 복잡해진 UI로 인한 강제적 체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위치 공유 기능이 쏘아 올린 '빅브라더' 공포
개편의 후폭풍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12일, 카카오맵 기반의 '친구위치' 공유 서비스 업데이트는 또 다른 논란에 불을 지폈다. 기존에는 시간 제한을 두고 위치를 공유했으나, 이번 업데이트로 당사자가 종료하지 않는 한 무제한으로 위치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카카오 측은 "가족의 귀갓길 안전이나 자녀 보호, 동호회 모임 등에 유용한 기능"이라며 편의성을 강조했다. 물론 치매 노인이나 어린 자녀를 둔 보호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기능이다. 그러나 성인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이 기능이 '디지털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직장 상사가 팀원들의 위치 공유를 '업무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요구하거나, 연인 간에 위치 공유가 사랑의 척도로 강요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거절할 수 있는 권리"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동의 하에만 작동한다"는 카카오의 설명은 위계질서가 명확한 한국 사회의 맥락을 간과한 기술적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편의 기능을 넘어선 '감시 도구'로의 변질 가능성은 기술이 인간의 존엄과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락인 효과의 딜레마… "못 떠나는 게 아니라 안 떠나는 것"
쏟아지는 불만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의 사용 지표는 견고하다. 지난달 MAU 감소폭은 0.4%에 불과했고, 사실상 이탈은 없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카카오가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 사용자 절반 이상이 "다른 메신저로 옮길까 고민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남은 이유는 단 하나, "남들이 다 쓰니까"였다. 이는 서비스의 매력도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시사한다. 사용자들이 서비스에 애정을 갖지 않은 채 습관과 강제성에 의해 머무르는 플랫폼은 모래성과 같다. 텔레그램 등 대안 메신저로의 '망명'이 주기적으로 거론되는 현상은 카카오톡에 대한 신뢰가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더욱이 이번 개편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 내부의 잡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무리한 업데이트 일정을 맞추기 위해 개발자들을 장시간 근로로 내몰았다는 의혹으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까지 받게 된 상황은, 카카오가 내세우는 혁신이 내부 구성원의 희생 위에서, 그리고 사용자의 불편을 담보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 아닌 '사람'을 향해야
거센 반발에 직면한 카카오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정신아 대표는 연내에 친구 목록을 다시 첫 화면으로 복원하고, 피드형 탭은 선택 기능으로 돌리겠다고 밝혔다. 홍민택 CPO 역시 "초기 설계가 사용자 경험과 맞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조용히 보내기', '실험실 기능 확대' 등 메시징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기능을 되돌리는 것을 넘어, 카카오톡이 지향하는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카카오톡은 단순한 사기업의 서비스가 아니다. 전 국민의 일상이 기록되고 공유되는 '공공재적 성격'을 띤 국가 기간 통신망에 준하는 플랫폼이다. 수익 모델 다각화를 위해 쇼핑, 콘텐츠, 광고를 무리하게 결합하고, AI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자의 익숙함을 억지로 깨트리는 시도는 멈춰야 한다. 사용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카카오톡의 모습은 화려한 AI 비서나 SNS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빠르고, 간편하며, 부담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메신저'다.
다가오는 연말 업데이트는 카카오가 '국민 앱'으로서의 초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기술로 일상을 바꾼다"는 카카오의 비전이 사용자의 일상을 '피곤하게' 바꾸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더 복잡하고 화려한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를 배려하는 섬세함과 소통의 도구로서의 담백함을 원한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이제 숫자로 증명되는 실적이 아닌, 사용자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때다.
